사진 왼쪽부터 쇼팽, 뉴턴, 베토벤,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사진 왼쪽부터 쇼팽, 뉴턴, 베토벤,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미쳤거나 천재거나 / 체자레 롬브로조 지음, 김은영 옮김 /책읽는 귀족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을 수식하는 말은 천재 피아니스트다. 천재 한 명의 등장으로 클래식 음반 시장이 들썩거린다. 음반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에서 천재에 대한 선망까지 느껴진다. 조성진의 등장으로 많은 부모가 또 한 명의 천재를 꿈꾸며 자녀들을 피아노 앞에 앉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재를 꿈꾼다고 만들 수 있는 걸까? 천재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범죄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체자레 롬브로조는 189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에 이 문제에 매달렸다. 천재들이 지닌 특징을 세밀하게 나누어 분류하고 보통사람들과 다른 그들의 실체를 정의하고 천재성의 원인을 찾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미쳤거나 천재거나’이다.

책 속에는 우리가 알만한 역사적 인물들의 기괴한 사례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희한한 내용들도 많다. 천재들은 키가 작은 경우가 많았다. 알렉산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부터 몽테뉴, 베토벤, 찰스 램까지 모두 단신이었다. 또 독신을 고집하거나 결혼을 했어도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혹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조숙함도 천재의 특징이다. 아홉 살에 베아트리체에게 연시를 써 보낸 단테를 위시하여 파스칼과 콩트는 열세 살에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하이네나 바이런은 방랑벽이 있었다. 모차르트는 음악적 영감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마치 꿈처럼 불쑥불쑥 떠올랐다고 한다. 혹은 꿈속에서 영감을 얻는 천재들도 많았다.

하지만 천재에게 이런 신화적 특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범한 기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광기 어린 행동들도 많았다. 줄리어스 시저, 도스토옙스키, 플로베르, 헨델 등은 모두 간질 발작이 있었다. 천재의 숙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우울증은 대다수에게 발견된다. 괴테는 평생 자신이 즐거웠던 날들을 다 헤아려도 4주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엄살을 부렸다. 조르주 상드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 쇼팽은 말년의 우울증이 너무 심했다. 뉴턴, 쇼펜하우어, 루소, 파스칼, 소크라테스 등 천재들의 특징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면 그 속에서 비정상 혹은 광기 어린 특징들을 더 많이 찾게 된다.

이 지점에서 저자인 체자레 롬브로조가 ‘범죄인론’을 통해 범죄자들이 지닌 생물학적 특징을 찾아낸 범죄학 전문가이자, 한때 정신병자 수용시설의 책임자로 일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일련의 연구로 범죄학과 법의학의 성립에 기여한 인물이다. 이 책은 천재성의 근원이나 특징보다 천재와 광인의 교집합에 해당되는 특질들, 다시 말해 천재란 실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과 얼마나 비슷한가에 더 많은 무게 중심을 싣고 있다. 천재성보다는 광기의 심리학 쪽에 기울어진 책이다.

1891년 출간된 책이니 당연히 내용 중에는 19세기의 세계관에 입각한 대목들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천재성은 여성을 피해간다거나, 여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없었겠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했어야 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인류사에서 천재가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부터다. 유럽의 계몽군주는 근대로 이행하는 급변기에 자신의 이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천재들을 활용했다. 모차르트가 신동 신화의 대표적 인물이 된 것은 근대 초기 시민계급 사회의 왕성한 교육열과 계몽군주들의 꿈이 만난 결과였다.

20세기에는 많은 학자가 천재성의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인 루이스 터먼은 지능지수 검사법을 창시해 지능과 천재성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지능지수와 비범한 창조성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신경과학자들이 뇌의 활동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서번트 증후군 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오늘날 천재에 대한 과도한 숭배 혹은 낭만적 우상화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다윈이 살던 시대와 달리 현대의 모든 분야는 전문화가 주류다. 한 명의 천재가 아닌 다수의 전문가가 활동하는 시대며, 다재다능한 천재의 비범함보다 대중지성이 각광 받는다. 그래서 최근 천재성에 관한 관심은 한 인물에 대한 조명이 아니라 창의성에 대한 관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자레 롬브로조의 ‘미쳤거나 천재거나’는 아직 천재가 이상화되던 시기의 고전적 저술이다. 천재성과 광기를 오가는 천재들의 기행은 기괴하지만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이상 심리나 천재들의 광기 어린 행동을 엿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