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중성(gender-neutral)’ 화장실입니다.”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여성’으로 구분되던 화장실 표시가 바뀌고 있다. 최근 새 건물로 이주한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는 ‘모든 성별(all-gender)’을 위한 화장실이 따로 있다. 워싱턴 백악관 행정동인 아이젠하워 건물 화장실에도 이런 표시가 등장했다.

존스홉킨스대·미시간 주립대와 일부 음식점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성 소수자 인권에 대한 존중이 화장실 문화를 바꾸고 있는 셈으로, 등장한 표시도 ‘중성’, ‘모든 성별’, ‘포괄적 성별(gender-inclusive)’, ‘개방적 성별(gender-open)’까지 다양하다.

법적 뒷받침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시애틀·버클리·산타페·오스틴·필라델피아 등에서는 성 소수자를 위한 화장실을 마련하라는 입법안이 속속 통과됐다.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LGBT) 등이 혼자 들어가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내용이었다. 기폭제는 올해 6월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혼 허용 판결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하고 있다. 동성결혼 허용을 지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0일 사상 처음으로 LGBT 잡지 ‘아웃(Out)’ 표지 모델로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핵심 동력은 LGBT 운동을 인권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미국의 선진 인권 문화다. 단순히 인권 문제라고 인정하는 것을 넘어 실생활의 불편까지 배려해야만 인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는 믿음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아웃’과의 인터뷰에서 “LGBT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인권 보호는 보편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명시한 보편적 인권을 확장하는 차원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독립선언서에 나온 “모든 사람”은 당시에는 백인 남성이었지만, 미국은 200여 년 역사를 통해 이 개념을 확장해 왔다. 이를 통해 미국 사회는 미국의 힘이 흑백 논리를 넘어 중간지대를 허용하는 관용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사회·인권 문제에도 흑백 논리를 갖다 대는 한국 사회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600달러로 선진국 문턱에 선 한국도 이제 성적 다양성 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
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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