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외에 제5의 계절이 있다. 이름하여 입시철. 이 시기에 수험생 부모에게 삼가야 할 질문이 있다. “아이가 수능을 잘 봤나요?” “어느 대학에 지원하나요?” 가까운 사이라도 이렇게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대학입시가 ‘지위 경쟁’의 싸움터가 된 탓이다. 학부모들은 자식의 대학 서열로 자신의 자존심 크기를 잰다. 그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게 상책이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0%대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고등교육 인구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인데, 내놓고 자랑하지 못한다. 교육의 질이 진짜 ‘고등’인 대학이 많지 않은 탓이다. 대졸자는 넘쳐나는데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떠올라 있다. 남들만큼은 배워야겠다는 교육열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는데, 이젠 그것이 나라의 숨통을 죄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4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교육개혁을 내세웠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그림이 나와 있지 않다. 자유학기제 등을 추진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일 뿐이다. 정권의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동개혁에 ‘유연성’이 있다면, 교육개혁엔 ‘수월성’이 있다. 경쟁지상주의도 안 되지만, 경쟁 없는 교육도 허구다. 공부에 능력있는 아이들을 최대한 뒷받침하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다른 길에서 행복을 찾도록 이끄는 개혁이 돼야 한다.
당면한 과제는 대학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일이다. 산아제한 정책이 출산 장려정책으로 바뀐 것처럼, 대학 숫자를 줄여놓으면 어느 시점에선 다시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현시점에선 부실 대학을 대거 퇴출시킴으로써 고등교육의 내실을 기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이른바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정책을 재검토해 봐야 한다. 사교육에 점령당한 초·중등 교육 정상화를 위한 혁명적 조치가 필요하다. 김대중정부 이후 정치·이념의 포로가 된 교단을 혁신하기 위해 중립적 교육개혁위원회 설립도 고려해 봐야 한다.
물론 교육개혁을 하루아침에 이뤄낼 순 없다. 다음 정부에 이어질 수 있도록 초석을 놓는 자세로 추진해야 한다. 큰 그림을 대통령이 그리면, 교육 수장은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미 마음이 정치권에 가 있는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빨리 교체돼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 오류다.
교육개혁은 정부 힘만으론 안 된다. 대학구조개혁 관련법이 계류하고 있는 데서 보듯, 국회 협력을 얻지 못하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여야는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 학교 정상화를 위한 방안들은 교원의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교원평가제와 수준별 이동식 수업 확대 등은 교사들이 받아들여야 실효가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국면서 드러났지만, 현장 교사의 상당수가 이 정부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런 교사들과 대화를 통해 혁신안을 찾는 일은 힘들지만 반드시 해내야 하는 숙제다.
교육개혁이 어려운 근본 이유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학벌주의에 있다. 그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내 자식만큼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의식은 강고하다. 그것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징후는 있다. 기술장인을 육성하는 ‘마이스터고’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 41개교 마이스터고 평균 취업률은 90%를 넘는다. 자식이 마이스터고에 간다면 기꺼이 허락하는 것을 넘어서 자랑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마이스터고의 성공은 작은 씨앗일 뿐이지만, 교육 현장에서 움튼 희망으로 잘 키워가야 할 것이다.
실업계 학교의 두 교사가 최근 책 ‘고졸전성시대’를 펴냈다. 고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13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적 환경의 한계를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길 수 없다. 고졸전성시대는 아직 먼 목표다. 그럼에도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분투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하다. 두 교사는 이렇게 적었다. “타고난 소질이 다름을 인정하고 어떤 직업이든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저 교문 밖을 나서면 크든 작든 자신의 일에 뿌리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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