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먹하거나 생색내기가 없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문자 그대로 ‘정’이 묻어나는 하루였다.
강원 홍천군 남면 명동리에서 지난 10월 23일 열린 대한항공 임직원들의 ‘1사1촌’ 활동. 연중행사 성격이 무색해지는 장면이 속속 눈에 띄었다. 오전 9시쯤 이 마을 해밀학교 운동장에 40여 명의 대한항공 직원들이 대형버스에서 내리자 주민들은 잠시 고향을 떠난 자녀를 반기듯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몇몇 직원들에게는 가족을 대하듯 이름까지 부르는 바람에 얼핏 보면 1사1촌 행사인지, 명절 행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동네 강아지들 역시 한데 모여 직원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외지 사람을 보기 힘든 농촌 어르신들의 반응이라 쳐도 직원들 역시 이런 환대에 자연스럽게 응하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이들은 한동안 오늘 점심 메뉴를 묻는다거나 올해 옥수수 농사가 어땠는지 물으며 진짜 한가족처럼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도농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간극을 부인할 수 없어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하는 보통의 1사1촌 행사와는 확실히 달랐다.
오랜 인연을 짐작하게 하는 이 모습들에는 근거가 있었다. 명동리는 2004년 6월 8일 농협중앙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일보가 시작한 1사1촌의 제1호 결연마을이다. 그 후로 강산이 한 번 바뀐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한항공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1년에 봄·가을 이 마을을 묵묵히 찾았다. 그 사이 명동리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직원, 이들을 자녀, 손주처럼 챙기는 마을 주민들도 생겼다.
7년째 이 마을을 찾고 있는 김학신 대한항공 기내식생산팀 과장이 그런 경우다. 처음 명동리를 찾았을 때 함께했던 초등학교 5학년 장남 형기(17) 군은 이제 어른티가 제법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돼 장정 구실을 한다. 이날 오전 형기 군은 바지에 흙이 잔뜩 묻었지만 개의치 않고 원래부터 자신의 일인 양 밭에 발을 푹푹 빠뜨리면서 비닐을 수거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동생 승기(7) 군은 마을의 귀염둥이였다. “다음번에 미리 연락하고 오면 개울가에서 그물치고 물고기 잡자”는 주민 최영원(68) 씨의 얘기에 귀가 솔깃해진 승기 군이 “진짜 나도 할 수 있냐”고 되묻자 최 씨는 크게 웃으며 “죽기 전에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고 대답했다. 김학신 과장은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 발길을 끊기 힘들다”며 “1사1촌을 통해 자녀들이 도시에서 하기 힘든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게 부모로서 보기 좋다”고 말했다.
딸 강은(8) 양과 함께한 이승영 대한항공 부기장도 명동리에서 빠지면 섭섭한 얼굴이다. 캠핑을 좋아한다는 막연한 이유로 4년 전 1사1촌 행사에 참여한 뒤 명동리 분위기에 스스럼없이 녹아들어 스케줄 근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꾸준히 마을을 찾고 있다. 4월에 일했던 비닐하우스에서 고추가 금세 자란 데 신기해하며 열심히 수확 작업을 하고 있는 강은 양은 갑작스러운 사진 촬영에도 당황하지 않을 만큼 나름 베테랑티가 났다.
“가뭄 때문에 메마른 땅을 보니 내 일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한숨을 쉬던 이 부기장은 “언제부턴가 마을이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1사1촌 초창기부터 참가하는 등 사내 ‘봉사왕’으로 유명한 김주덕 인천여객서비스지점 과장은 일을 지시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봄에 직접 옥수수 모종을 심었던 밭에 선 그는 “콩 농사를 위해 지금은 땅을 다듬어야 할 때”라며 동료들의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를 따라 처음 마을을 찾은 같은 부서 상사 김남진 부장은 “왜 (김 과장이) 이 행사에 그렇게 열심히 참여하는지 알겠다”며 “생각보다 어려운 농사일이지만 자연에 나와 땀을 흘리니 나도 절로 치유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항공의료센터 소속 의사와 간호사로 꾸려진 의료봉사단도 확실한 주민 사랑의 지분을 갖고 있다. 행사 때마다 의료봉사단이 마을 체육관에 자리 잡으면 오전에 대부분 주민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연로한 주민들은 이들이 오는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이날이 되면 파스, 진통제 등을 받아가면서 심리적 위안까지 얻는다.
파스가 든 봉투를 품에 안은 주민 유병규(83) 씨는 “대한항공 측의 성의에 감사한 마음”이라며 “특별한 약은 아닐지라도 나한테는 ‘만병통치약’만큼이나 소중하다”고 말했다.
홍천 =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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