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봉사단체 ‘늘푸른회’ 사무실에서 윤명자 전 교사가 지난 17일 기부받은 옷을 정리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봉사단체 ‘늘푸른회’ 사무실에서 윤명자 전 교사가 지난 17일 기부받은 옷을 정리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늘푸른회’ 퇴직 교사 윤명자씨

“우리 아이들이 서툰 솜씨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만나지 못하는 자식들이 그리우신지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들도 계셨어요. 헤어질 때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눈에 밟혀 다시 찾기를 반복한 것이 벌써 20여 년이 흘렀네요.”

지난 17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 봉사단체 ‘늘푸른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윤명자(70) 씨는 42년간 군포시와 안양시 일대의 신흥초, 용호초, 안양초, 군포초교 등에 근무하다 지난 2007년 퇴직한 교사다. 그는 1996년부터 담임을 맡은 반 학생 등과 양로원, 장애인 복지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윤 씨는 “1965년 교직에 입문한 직후부터 혼자서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다 1996년부터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어나면서 늘푸른회를 조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씨는 1996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군포시의 용호초교 5학년 학생들과 함께 인근의 양로원으로 첫 봉사활동을 하러 갔을 때를 잊지 못한다. 그는 “할머니들이 모여서 사는 양로원 원장으로부터 어르신들이 적적하게 지내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아이들에게 양로원을 함께 방문할 것을 제안했다”며 “아이들은 흔쾌히 동참의 뜻을 밝혔고 끼리끼리 뜻을 모아 태권도 시범, 한국무용, 합창 등을 연습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물론 윤 씨도 양로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한껏 들떠 있었다. 양로원에 도착해 학생들이 장기자랑을 하자 할머니들은 함박웃음과 박수로 화답했다. 오랜 시간 보지 못한 가족들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는 “양로원 공연은 대성공이었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현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아이들도 뿌듯해했다”고 자랑했다.

양로원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학생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양로원에 다녀온 후 시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안부를 챙기는 학생들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이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하게 된 윤 씨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윤 씨는 봉사활동을 나갈 때면 학부모들이 감사의 의미로 건네준 선물을 모두 들고가서 복지재단 등에 전달했다. 학생들도 용돈으로 사탕과 과일 등을 사서 복지재단의 어르신 등에게 전달했다. 그는 다음 해인 1997년 군포시 산본동의 신흥초교로 전근을 간 이후에도 학생들과 함께 양로원 등으로 봉사활동을 나갔다. 당시 신흥초교 1학년이었던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연아는 가까운 친구 4명과 함께 아이돌 그룹 HOT의 춤을 연습해 할머니들 앞에서 야무지게 솜씨를 뽐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윤 씨는 퇴직 후에도 활발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립어린이집에서 동화구연을 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지도 봉사를 한다. 그는 “몸은 고되지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봉사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씨가 퇴직 후에도 봉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자들 때문이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그의 제자들은 퇴직한 윤 씨를 도와 저소득층 학생들의 과외 교사를 자청하고 나선다. 매달 3000원씩 기부하는 제자들도 있다. 재직 시절 윤 씨가 하듯이 직장에서 선물로 받은 쌀이나 과일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보태라며 택배로 부치는 제자들도 있다. 그는 “대학에 다니고 직장인이 된 제자들이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 봉사하는 일에 힘을 보태 줄 때면 든든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과 후원자들이 매달 기부하는 돈과 물품을 모아 저소득층 가정이나 복지재단에 전달한다. 봄이면 손수 쑥을 뜯어다 기부받은 쌀로 쑥떡을 만들어 인근 지역의 어려운 가정에 전달하기도 한다. 윤 씨의 소문을 들은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구제 옷과 가방, 신발을 기부하기도 한다. 윤 씨는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최근 집 근처 쉼터에서 글을 깨치지 못한 노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새롭게 시작했다. 쉼터에서 윤 씨에게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다. 윤 씨의 제자 중에는 88세 고령의 할머니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윤 씨에게 한글을 배우러 쉼터를 찾기도 한다. 그는 “어르신들을 가르치면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상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자랑했다. 윤 씨는 “수업을 하기 위해 매일 오전 10시에 쉼터에 들어서면 어른들이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진지하게 예습하고 있다”며 “조용한 분위기에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열심히 공부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수업을 1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설명했다.

윤 씨가 퇴직 후에도 이처럼 봉사활동을 쉬지 않고 하는 것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퇴직 후 남는 시간에 여유롭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윤 씨는 퇴직 후에도 집안 사정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는 2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과 최근 세상을 떠난 친정아버지의 병간호를 도맡아 했다. 1남 2녀의 자녀들을 돌보는 데도 꽤 손이 많이 갔다. 윤 씨는 그 와중에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윤 씨는 “천성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 탓인 것 같다”며 “내가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남을 더 도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을 쪼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아파서 남을 돕지 못하는 때가 오면 나의 제자들과 자식들이 내가 남긴 재산으로 남을 도우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군포 =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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