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 논설위원

영어의 타운(town)은 성채, 울타리 또는 벽으로 둘러싸인 땅을 가리키는 고대 영어 ‘툰(tun)’이 변한 말이다. 시티보다는 작고 빌리지보다는 큰 행정구역을 가리킨다. 그런데 타운과 빌리지를 가르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시장(市場)이다. 우리의 ‘도시’라는 말에도 ‘저자(market)’를 가리키는 한자가 들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서양이 하나의 ‘지구촌’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 마을에는 상설 시장이 없다.

시장이 없는 마을은 평온하다. 그러니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왁자지껄함과 거리 먼 시골이 그 배경이 된다. 마을은 보통명사로 쓰이기도 하고 말단 행정구역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동안은 ‘부락(部落)’이라고 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면(面) 단위 아래 ‘-리(里)’를 두고 그 아래 단위인 ‘마을’을 부락으로 개칭한 이후다. 이때 한실을 대곡(大谷)이라 하고, 새 마을을 신촌(新村)이라고 하는 등 마을 이름들을 한자어로 바꿔 버렸다. 그뿐 아니라,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끝에다 ‘부락’이란 명칭을 갖다 붙이기까지 했다.

부락은 일본어로 ‘부라쿠(ぶらく)’인데, 그 의미는 우리의 마을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시골에서 여러 민가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이라며 ‘마을’로 순화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일본의 ‘부라쿠’는 정·촌(町村) 제도가 시행된 이후 ‘촌’으로 통합된 대자촌, 소자촌 등을 가리키는 부분촌락(部分村落)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문제는 부라쿠가 ‘피차별 부락’의 준말이며, 과거에 행정적으로 동화(同和)지구 또는 미해방 마을을 가리켰다는 점이다. 에도(江戶)시대에는 이곳 거주민을 ‘에다(穢多)’니 ‘히닌(非人)’이니 했다. 에다는 사형장 종사자나, 백정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히닌 역시 에다처럼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판 향소부곡(鄕所部曲) 거주민이다. 결국 일제가 우리의 자연 마을을 자기네 부라쿠와 같은 수준으로 격하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가 짙게 묻어난다.

정부가 국민투표법시행령의 별지 제1호 서식에 남아 있던 ‘부락’이란 말을 ‘마을’로 바꾼다고 한다. 비록 뒤늦었긴 하지만, 일제 식민지 통치의 잔재 청산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황성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