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새누리당 친박(親朴·친박근혜)계가 ‘이원집정부제(dual executive system)’ 분권형 개헌을 언급했고, 청와대는 서둘러 부인했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이 언론을 통해 동시에 주장했음을 통해 짐작하건대 내부적으로 상당한 논의를 거친 듯싶다. 여론의 향방을 묻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정권 재창출에 대한 절박한 토로, 그리고 내년 총선 후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한 마음이다.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은 절망하고 있는데, 집권세력의 핵심들이 미래의 대권 쟁취에 정신이 팔려 진짜 해야 할 일을 망각한 모습이다. 시기적으로도 박근혜 정권 3년차에, 그것도 4대 개혁, 일자리 창출 등 해야 할 일이 산적함에도 한가하게 정권 재창출을 위한 개헌을 언급한 것은 ‘나쁜 정치’다.

‘반기문 대망론’부터 ‘오세훈 대망론’까지 대선 주자가 없는 친박계의 절박함을 이해한다. 그래도 위인설관(爲人設官)식 권력구조 개편과 개헌 논의의 가벼움, 그것도 자신들이 반대했었던 ‘이원집정부제’를 들고 나온 것은 신중하지 않았다. 권력 재창출에 눈이 먼 탓이다.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큰 사안인데 끼리끼리 추진은 옳지 않고 검증된 제도로 적절한 시기에 국민에게 먼저 묻는 것이 절차적으로 옳다.

권력구조(power structure)라 함은 통치 방식을 의미한다. 통치 방식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둘로 나뉜다. 흔히 이원집정부제를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중간쯤에 위치한 제도로 이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원집정부제 아래서는 총리가 일상적인 국내 문제를 책임지고, 대통령은 이에 대한 감시, 대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 운용에 있어서는 총선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 승리하면 총리 지명을 포함, 내각까지 대통령이 책임을 지게 돼 대통령제 형태를 띠게 되고, 총선 결과 대통령과 총리가 소속된 정당이 다르게 된 경우에는 총리 중심의 내각제 형태를 띠게 된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는 약점이 있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역할 균형이 어렵고 권력투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친박계가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권력구조를 택하게 되면 대통령이 통일과 외교를 맡고 총리가 내정을 담당하는 구조가 된다. 하지만 이는 외교와 내정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1차원적인 사고에 기반한다. 외교로 분류되는 통일 문제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경제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안인데 외교·통일과 내정을 구분하는 권력 분권이 가능하다는 사고는 허망하다. 이원집정부제라는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도 외교와 내정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라는 골치 아픈 대국 이웃이 있어 민감한 국제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이 외교에 집중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압력이 약해지면서 대통령의 위상도 낮아졌고, 2000년 핀란드는 헌법 개정을 통해 내각제적 요소를 강화했다. 그리고 헝가리와 같은 과거 공산국들도 초기의 이원집정부제를 벗어나 내각제로 바꿨다. 안정된 제도가 아니다.

또 이원집정부제 아래서는 여당의 중진 의원들이 국회 권력을 넘어 장관으로 행정부를 장악하게 된다는 문제점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특권에 기대어 자신의 이익과 지역구만 챙기던 국회의원들이 내각까지 장악해 행정을 맡게 되는 경우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두워 보인다. 재정위기를 맞았던 그리스처럼 포퓰리즘의 극치가 되거나, 정치에 의한 행정의 장악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던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처럼 암울해질 것이다.

정치란 ‘바르게(正) 나라를 다스리는 일’, 바른 비전을 깃발에 담아 내세우고 흐르는 강물에 둑을 쌓듯이 사회의 흐름을 유도해 나가는 행위다. 정치인들이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어떻게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이를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정권 연장을 위한 정치공학에 목을 매는 건 ‘바른 정치’가 아니다.

권력구조와 헌법을 바꾸려 하면서도 국민에게 먼저 물어보지도 않는 정치집단이라면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 ‘바른 정치’를 만드는 힘은 국민에게 있다. 정치권이 본연의 책임을 다하도록 견제하는 시민성(citizenhood)을 발휘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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