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나이 일흔 다섯의 생물학자인 저자가 ‘생명체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다. 평생 생물을 연구해온 학자의 입장에서 그가 말하는 죽음이란 고통과 소멸이 아니라 순환과 재생산의 축복 같은 것이다. 생태계 속에서 한 생명체가 죽는다는 건, 곧 그 죽음이 다른 생명들의 자양분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육체의 종말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재생과 순환의 자연스러우면서 축복할 만한 과정이라는 것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야생동물을 연구해 온 저자는 은퇴 후 사들인 미국 뉴잉글랜드의 숲 속에서 차에 치여 죽은 쥐, 사슴, 너구리 따위를 들판에다 놓아두고 한 생명의 죽음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죽은 들쥐를 땅에 묻고 거기서 짝짓기를 하는 송장벌레, 동물의 사체를 완벽하게 해체하는 큰까마귀의 소통 방식, 늑대·고양잇과 동물·여우 등이 사냥한 먹이를 ‘의도하지 않은 팀워크’를 발휘해 널리 퍼뜨리는 과정 이야기는 이런 관찰의 소산이다.
생명은 죽어서 ‘먼지’로 돌아간다고 한다. 성경에는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란 구절이 나온다. 창세기에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라’는 문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먼지가 아니라 ‘생명’에서 왔고, 또 ‘생명’으로 되돌아간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 자신이 곧 다른 생명으로 통하는 통로’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문화와 역사, 동식물과 인간세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창의적 시선과 다양한 사례에서 이끌어낸 이야기의 풍성함이 인상적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명과 죽음의 그물망 관계를 통해 인간의 관점을 뛰어넘어 자연과 생태의 관점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저자의 수준급 연필스케치를 보는 재미도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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