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50) 모델골프 아카데미 원장은 요즘 전인지의 스윙 코치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인지는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5차례 정상에 오르며 대상·최저타수상·상금왕 등 4개 타이틀을 석권한 에이스다.
KLPGA투어 시즌 최종전 조선일보-포스코챔피언십이 열린 지난 15일 경기 용인 레이크사이드골프장 클럽하우스 한쪽에서 박 원장이 경기를 마친 자신의 제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포옹하며 어깨를 다독거렸다. 여기에는 전인지도 있었다. 경기 성남시 남서울골프장 제2 연습장에서 아카데미를 열고 있는 박 원장은 전인지를 비롯해 KLPGA투어 선수 8명과 프로지망 아마추어 선수까지 20여 명을 제자로 두고 있다.
박 원장이 전인지와 인연을 맺은 것도 벌써 4년이 넘었다. 박 원장은 케이블 골프 방송의 해설가로 일하고 있었지만, 투어 선수들에겐 ‘족집게 코치’로 명성을 얻어왔던 터였다. 2011년 함평골프고 1학년이던 전인지는 국가대표로 발탁됐지만, 아직 미완이었다. 박 원장은 “대구에서 열린 송암배 대회 때 인지 아버님이 찾아와 인지를 맡아 줄 것을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당장 스윙을 고쳐 혼란을 주는 것보다는 퍼팅 교정에 역점을 뒀고, 두 달도 채 안 돼 효과가 나타났다. 전인지가 프로대회인 하이트컵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했던 것. 박 원장은 “인지는 종합적인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난 선수”라며 “가르치면 스펀지처럼 곧바로 빨아들일 만큼 골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박 원장의 티칭 철학은 ‘신나는 골프’를 추구한다. 박 원장은 “스윙 등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선수가 게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아무리 완벽하게 스윙을 만들어 놔도 자고 나면 다시 틀어지는 게 스윙이다. 스윙이 되지 않더라도 한타, 한타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스코어를 만들 줄 알려면 멘털적으로 게임을 풀어 갈 수 있도록 판단력이나 경기운영 능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박 원장은 골프의 진짜 재미는 실수로 인해 러프로 가고, 벙커에 가더라도 어떻게든 막아냈을 경우 짜릿함을 느끼고 그런 골프에 대한 마음가짐에서부터 재미를 느끼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강조해왔다.
박 원장이 전인지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하나 외환챔피언십 때였다. 첫날 4오버파로 부진하자 전인지가 “볼이 너무 안 맞아 응원해준 팬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창피하다. 기권하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박 원장은 이때 전인지에게 “꼴찌로 출발해도 마지막 날 우승을 다툴 줄 아는 선수가 진짜 프로”라며 “안 될수록 스코어 만들어 낼 때의 멋진 모습을 상상해 보라”며 조언했다. 전인지는 2라운드에서 5언더파, 3라운드 3언더파, 그리고 마지막 날 6언더파를 몰아치며 공동 선두가 됐다. 비록 연장에서 백규정에게 패했지만, 준우승까지 차지했던 전인지는 이런 경험 덕에 올해에는 첫날 부진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생겼고, 남은 경기에서 좋은 스코어를 내 여러 차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밑천이 됐다.
박 원장은 골프선수 출신은 아니다. 골프를 치진 않았지만 다만 어린 시절부터 골프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아널드 파머의 ‘무지개 우산’ 로고를 보고 골프에 호기심이 생겼다는 박 원장은 이후 학교 도서관에서 신문의 스포츠 면에 나온 골프 기사를 유심히 보며 선수들 기록을 꿰찼을 정도였다. 이런 박 원장이었지만 실제 본격적으로 골프를 친 것은 박사 학위를 받은 32세 때부터. 고려대 무역학과에 입학해 1992년 석사학위를 받은 박 원장은 대학원 재학시절 유학비용을 벌기 위해 ‘영어 학원 강사’를 했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보습학원을 차려 유학비를 마련했다.
박 원장은 미시간주립대에서 ‘미래학문’인 환경관리정책으로 박사 학위까지 땄다. 한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외환위기 탓에 무산됐다. 오스트리아 빈에 소재한 환경 관련 국제기구(IISA)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하지만 발령은 이듬해 8월에나 나기 때문에 10개월 동안 대학 내 36홀짜리 ‘포레스트 에이커스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골프에 빠지면서 프로자격증이나 하나 따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고, 이때부터 해뜨기 전 코스에 나가서, 해질 때가 돼서야 돌아왔다. 재학생은 연간 500달러만 내면 무제한 이용할 수 있었고 이 기간 동안 핸디캡을 한 자릿수로 줄였다. 챔피언티에서 6언더파까지 쳤다. 틈틈이 골프스윙이론 서적을 탐독했고, 캠코더를 이용해 자신의 스윙을 녹화, 톱 프로들과 스윙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관성이 떨어져 방법을 찾던 중 3차원으로 스윙을 입체 분석한 ‘모델골프’를 처음 접했다. 모델골프는 미국 육상대표팀 허들에서 메달을 딴 랠프먼이 만들었다. 사람 몸으로 가장 똑바로 볼을 칠 수 있는 스윙 자세를 표본으로 제작했다.
박 원장은 빈에서 2년간 근무한 뒤 2000년 미국으로 돌아와 컬럼비아 서던대학에서 교수로 일한 뒤 미시간주립대 객원교수로 근무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클래스 A(티칭프로)를 받으려 실기 테스트(PAT)를 통과한 뒤 2년간 연수생(어프랜티스)신분으로 정식 프로의 감독하에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사건이 터지자 외국인에게 클래스 A 문호를 닫았다. 박 원장은 하는 수 없이 미국골프지도자협회(US GTF) 프로 자격을 취득했고, 2년 후 ‘마스터’ 자격을 땄다. 2003년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골프해설 의뢰가 들어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설가로 이름이 알려지자 선수들이 한두 명씩 그를 찾아왔다. 가장 먼저 김보미 프로가 찾아왔고, 박 원장의 지도를 받은 김보미는 이듬해 상금 랭킹 톱 10에 들었다. 이어 국가대표 정재은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본격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박 원장은 “주말골퍼들도 한두 홀 안 된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한홀, 한홀에서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하는 재미를 붙이면 지금보다 골프가 훨씬 즐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퍼팅 잘하는 비결은 가장 비과학적인 것 같지만 가장 과학적인, 바로 ‘감(感)’이라고 강조했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메커닉스에 너무 의존하면 퍼팅이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고 또한 사람의 뇌는 모든 동작을 할 때 끊임없이 계산을 하기 때문에 신경과 본능의 반응, 즉 감에 충실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용인=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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