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룩 패션 브랜드 꿈꾸는 ‘파이어마커스’
‘파이어마커스(Firemarkers)’는 소방서에서 쓰인 뒤 버려지는 장비를 재료로 활용해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기업명 파이어마커스는 ‘소방의 흔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2014년 4월 파이어마커스는 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출범했다. 소방서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장비는 소방호스다. 화재 현장에 물을 뿌리는 데 없어선 안 될 장비인 소방호스는 아주 미세한 구멍 하나만 나도 폐기해야 한다. 15m에 달하는 소방호스가 통째로 버려지는 것이다. 마땅히 재활용할 방법이 없어 소방서는 돈을 주고 소방호스를 폐기하고 있다. 평생 소방관으로 살아온 아버지 덕분에 이런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이규동(27) 파이어마커스 대표는 소방호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거해서 사용해도 되는지 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어차피 버리는 것이니 무방할 것 같다는 답을 들은 이 대표는 경기 하남시와 이천시 등의 소방서를 돌며 200∼300개의 소방호스를 수거했다. 몇 개 소방서에서 200∼300개가 나올 정도면 서울 등 전국 각지 소방서에서 더 많은 재료를 구할 수 있을 터였다. 값싼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데다 소방호스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이 직접 사용한 것으로, 소방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제품에 소방관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라는 의미를 담자고 생각했다.
파이어마커스는 이 대표와 박용학(27), 박지원(25), 신초현(23), 김주혜(24) 씨 등 5명이 의기투합해 시작됐다. 처음에는 10명으로 시작했으나, 창업 과정이 힘들어 5명이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이 대표는 “소방서에서 호스를 수거하는 게 거의 막노동 수준인 데다 재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게다가 처음에는 소방서에서 왜 소방호스를 집어가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때 묻은 소방호스를 깨끗하게 하려고 사무실에서 직접 세척하기도 하고 너무 힘이 들어 세탁기로 돌려 보기도 했다. 친환경 세제를 풀어 오랜 시간 담가 놓은 뒤 세척하면 깔끔하게 닦인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소자본으로 창업하다 보니 소방호스를 직접 잘라 평평하게 만든 뒤 공장에 맡기고 있다. 시행착오가 적지 않지만, 차츰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파이어마커스의 활동이 소방관 사이에 널리 알려져 수거할 때 격려받는 경우도 많다.
첫 제품은 2014년 6월에 나왔다. 하지만 거의 팔지 못했다. 파이어마커스의 사업 취지와 제품을 알릴 방법을 찾지 못해 제품을 창고에 쌓아두고 5개월이 흘렀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소셜벤처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좋은 일 하고 있다. 꼭 잘될 것 같다”는 방문객의 응원을 듣고, 그간 사라졌던 자신감도 회복했다. 올 3월에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판매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파이어마커스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건 지난 9월 한 인터넷 페이지에 소개되면서부터다. 파이어마커스가 버려진 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들어 판매하고, 판매수익으로 소방관에게 소방장갑을 기부하는 기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인터넷 페이지에 소개된 직후 그동안 창고에 쌓였던 재고가 일주일 만에 동났을 정도였다. 하루 20∼30개씩 주문이 들어와 일주일 동안 2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판매량만큼 일정 비율로 소방관에게 소방장갑도 기부했다.
뜻밖의 ‘대박’에 재고가 떨어지다 보니 파이어마커스는 현재 제품 생산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이 대표는 “아직 소규모 생산을 하다 보니 판매량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현재 소방호스 수거 작업 중이고, 11월 말쯤 6∼7개 디자인의 가방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파이어마커스는 소방호스를 소재로 한 가방 제작·판매를 넘어 옷과 액세서리 등을 망라한 종합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대표는 “군복도 예쁘니까 밀리터리룩으로 발전하지 않았느냐”며 “소방 아이템도 얼마든지 ‘소방룩’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내년 초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고정적인 수입을 창출해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사업 목표다.
이 대표는 소방관인 아버지를 동경해 본인 역시 소방관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대학도 소방 관련 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창업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다 보니 스스로 생산한 물건이 소비자에게 인정받아 판매되는 일이 매우 보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 대표는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창업 초기에 아버지께서 아직 늦지 않았으니 소방관에 도전해보라고 말씀하곤 하셨다”며 “사업가를 선택했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는 소방관의 숭고한 삶에 대한 동경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 동경을 파이어마커스를 통해 실현하고 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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