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융합’ 멍석깔기
비교우위 분야 사업재편
인수·합병 활성화 전망
官주도에 회의적 시각도
정부가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작으로 대기업 간 기술 융합 연구·개발(R&D) 지원에 나선 것은 국내 기업 간 높은 장벽으로 인해 좀처럼 이종 (異種)산업 간 기술 융합을 통한 신기술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개별 기업이 추진하는 하드웨어 기술에 대한 지원보다는 각 기업이 강점을 서로 ‘이종교배’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에 정부가 더 무게를 두겠다는 의미다.
23일 산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작으로 친환경자동차 등 기술 융합이 필수적인 사업 부문들을 선별해 대기업 간 기술공유·융합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1년 4월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산업융합발전위원회를 구성, 산업융합 촉진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제1차 산업융합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지난해 2조 원 가량의 예산도 편성해 제조업과 정보기술(IT) 융합을 통해 주력 산업을 고도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시장을 주도할 신기술, 이른바 ‘시장주도자(First Mover)’를 만들어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특정 업체와 기술에 융합 R&D 지원이 이뤄져 개별 실적을 내긴 했지만, 이 원천기술들을 융합·응용해 시장을 주도할 신기술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기업들이 자사가 개발한 기술 공유에 인색한 나머지 기술이 고립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일례로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 기존 완성차 업체는 소재 및 부품 등에서는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매핑, GPS, 통신 기술 등 다른 전문 대기업의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다. 산업계는 각 대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응용·융합할 수 있는 장을 마련된다면 자율주행 자동차의 상용화도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IT기업인 구글이 자율주행자동차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기존 자동차 분야를 넘어서는 기술의 이종교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기술에 대해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우리 산업구조에서 특정분야의 선행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 간 기술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도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원천기술 개발 외에도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 기술을 재조합해서 단기간에 혁신제품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기술 공유·융합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민간의 필요성에 따른 제휴, 협력 관계가 아니라 정부의 ‘압박’에 따라 융합이 진행될 경우 국내 대기업들이 각자가 보유한 핵심기술을 공유하는 데 반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기술 융합 시도를 통해 참여 기업들이 특허권 공유 등으로 융합 신기술의 높은 시장성을 확인한다면 산업 재편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각자 필요한 부분,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는 게 빠르다”며 “기업 간 협력체 구성이 이뤄지면 각자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 부분의 재편, 혹은 인수·합병(M&A)도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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