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무라야마 담화 이끌어내

북핵 위기로 대북 강경론 선회
클린턴 포용정책 탓 관계 불편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일 외교에서 강경 기조를 바탕으로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선명한 목소리를 냈다. 대미 외교에서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우호 기조 속에서도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조성됐다. 1993∼1994년 1차 북핵 위기 등으로 남북관계가 급랭한 가운데서 북·미 제네바 협상이 열리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환경이 어느 때보다 순탄치 않았던 것도 김영삼정부의 외교를 둘러싼 평가와 무관치 않다.

정부 출범을 전후로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현안으로 부상하자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3년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직접 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이 같은 전략은 일본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강화했다. 그 결과 당시 일본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및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담화가 발표됐다. 일본 내에서 반작용으로 극우 정치인들이 영토·과거사 문제에서 망언을 늘어놨다. 만만찮은 역풍에 김 전 대통령은 대응 차원에서 해군력 강화 등 강경 노선을 밟았다. 양국 관계 악화와는 달리 국내적으로는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김 전 대통령이 1995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것은 정부의 당시 대일외교 기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출범한 미국 클린턴 정부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양국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1993년 7월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정도였다. 두 정상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점차 틀어졌다. 1차 북핵 위기 이후 연이은 악재로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김영삼정부가 대북 정책을 강경론으로 선회했다. 포용정책을 편 클린턴 정부와는 불편해졌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서울 불바다’ 발언 등으로 남북 관계가 급랭했다. 이 가운데 미국이 북핵 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199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타결하자 한국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양국 관계가 삐걱거리게 됐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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