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청사 해체도 큰 성과
국민의 힘으로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이 갖는 힘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착수했다. 특히 5·18 특별법을 제정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았다. 또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등 일제 잔재 청산에 매진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 핵심이었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군사 반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그는 기득권층의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5·18 특별법 제정과 검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냈다. 이들의 부정 축재까지 밝혀냈다.
김 전 대통령은 ‘군사혁명’으로 규정돼 있던 5·16을 명백한 군사 쿠데타로 규정하고 교과서에 이를 반영토록 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하고 5월 18일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도 김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을 철거하고 경복궁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식 표현인 ‘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뀐 것도 이때다.
조선총독부 청사 해체는 민족의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가 경복궁의 4분의 1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웠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청와대를 가로막은 형태로 민족 정기의 맥을 끊어 놓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이승만 정부 때부터 철거 논의가 제기됐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그대로 있는 한 민족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할 수 없다며 철거를 밀어붙였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김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 핵심이었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군사 반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그는 기득권층의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5·18 특별법 제정과 검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냈다. 이들의 부정 축재까지 밝혀냈다.
김 전 대통령은 ‘군사혁명’으로 규정돼 있던 5·16을 명백한 군사 쿠데타로 규정하고 교과서에 이를 반영토록 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하고 5월 18일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도 김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을 철거하고 경복궁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식 표현인 ‘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뀐 것도 이때다.
조선총독부 청사 해체는 민족의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가 경복궁의 4분의 1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웠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청와대를 가로막은 형태로 민족 정기의 맥을 끊어 놓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이승만 정부 때부터 철거 논의가 제기됐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그대로 있는 한 민족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할 수 없다며 철거를 밀어붙였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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