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국내 자동차산업의 현실과 문제점 등에 대해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국내 자동차산업의 현실과 문제점 등에 대해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공직자 시절 주로 산업이나 기술 정책, 통상 등의 업무를 주로 맡았고 자동차 같은 특정 산업을 미시적으로 담당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천타천으로 자동차산업협회장 자리를 맡게 됐을 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해왔던 일에 비해 업무 영역이나 범위가 조금 작아 보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막상 와보니 자동차산업은 노사 문제를 비롯해 환경, 통상 등 모든 이슈가 다 포괄돼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의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 산업계 문제가 모두 해결될 정도로 자동차 관련 정책은 종합적입니다. 협회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고요. 어떻게 하면 자동차 산업, 더 나가 제조업 관련 정책의 틀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각종 행사에 참석한 김용근(59)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회장을 한 발 떨어져 지켜보며 기자는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기만 하는 그가 첨예한 노사 관계를 비롯해 환경 규제, 자유무역협정(FTA), 소비자 문제 등 복잡다단한 자동차 관련 각종 이슈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한반도의 끝자락 고흥군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과 함께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80년 5월 총무처 사무관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해 상공부 산업진흥과와 국제협력과, 통상정책과 사무관을 거쳐 통상산업부 국제기업담당관, 주 제네바대표부 참사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장, 산업정책관(국장), 산업정책본부장(차관보) 등 28년간의 공직 생활 동안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산업 정책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이후에도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등을 거치며 주로 거시적, 이론적 측면에서 산업기술 및 통상 정책을 다뤄온 그가 2013년 10월 국내 완성차업계를 대표하는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을 맡았을 때 자동차 업계 역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만난 그가 낮지만 열정적인 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까지도 ‘유약한 공무원 출신’이라는 선입견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10분 정도 그가 지금껏 걸어온 길과 생각, 철학 등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런 편견은 자취를 감췄다.

대학 재학 중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길은 정부 주도의 산업화가 한창이던 당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공무원 생활이었다. 구 상공부 산업진흥과에 발을 들인 그는 산업정책, 특히 기술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결국 이 일은 공직 생활 내내, 아니 공직 생활을 마친 이후까지도 계속되는 평생의 ‘업(業)’이 되고 말았다.

“특히 기억나는 일은 산업진흥과 사무관 시절 상공부 최초의 기술개발사업인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을 입안해 혼자 예산을 따내고 운영시스템을 가동해 현 지식경제부 산업기술 업무의 기초를 닦은 일입니다. 지역산업국장을 맡았을 때는 지역기술 연구·개발(R&D) 사업과 지역클러스터 사업, 지역혁신인력양성 사업 등을 입안했고 차관보로 일할 때는 산업자원 통합기술 로드맵을 만들고 R&D사업 통합운영과 지원시스템 개선, 기술금융기반 강화 정책 도출 등을 맡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는 외국인 투자유치에 대한 무관심과 국민적 거부감이 팽배했던 1990년대 중반 최초로 해당 업무를 기획해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선진국 대상으로 본격 유치 활동을 전개했다. 불과 몇 년 뒤인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외국인 투자유치가 국가적 과제로 부각됐고 관련 주무부처도 재정경제원에서 통상산업부로 공식 이관됐다. 노무현정부 초기에는 당시 산업자원부로서는 생소한 지역균형발전 업무를 맡아 국가균형발전법 제정과 국가균형발전 제1차 5개년 계획 수립 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 공무원 신분으로 뉴욕타임스에 해외 채권단의 고금리 요구를 비판하는 기고를 했던 일화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관료 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외환위기 당시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던 일입니다. 당시 전 세계 언론들이 한국의 경제 정책과 재벌 위주의 산업 구조를 비난하고 희망 없는 나라라고 폄훼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생각해 일정 부분 책임을 공유해야 할 채권단이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두고 흥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로 고금리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했는데 마침 정부의 외국인 채권 관련 협상단이 뉴욕에 도착하는 날 게재됐습니다.”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시절에도 짧은 기간에 조직 분위기를 바꿔놓아 ‘조용한 추진력’의 소유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공공기관 특유의 부서 간 칸막이를 제거하고 직급 및 직위 체계도 성과주의적 순환형 체계로 탈바꿈시켰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재직 시에는 국내 최초 기술융합지식콘서트로 꼽히는 ‘테크플러스(tech+)’ 포럼을 창시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큰 소리 없이 성과를 내고 조직을 바꿔놓는 것은 한국자동차산업협회를 맡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부임 직후 자동차업계를 대표해 당시 최대 난제였던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시행을 늦추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산업의 후발주자였던 한국은 현재 중국과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 지위를 지키고 있고, 현대·기아자동차는 글로벌 5위 완성차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자동차 생산과 수출은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수입차는 해마다 두 자릿수 판매증가율을 기록하며 내수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도 주력시장인 신흥국 시장의 불황과 엔저(엔화가치 약세) 등을 등에 업은 일본차 공세,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차의 추격 등으로 ‘국산차 위기’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처음 협회에 왔을 때는 밖에서 보기에 국산차가 잘나가는 것처럼 보여 ‘노는 자리에 간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내심 걱정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국산차가 잘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착시였습니다. 일례로 국내 자동차 생산은 450만 대에서 몇 년째 머물러 있습니다. 수출은 지난해부터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요. 제조업에서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기준 생산은 12.1%, 고용 11.4%, 수출 13.4%로 가장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곧 우리 산업 전반의 위기입니다.”

김 회장이 꼽는 국산차 위기의 최대 원인은 갈수록 높아지는 노동 비용 문제다. 인건비는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생산성은 떨어지다 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어렵다는 진단이다. 그는 고심 끝에 지난 9월 이례적으로 완성차업계는 물론 부품업계, 학계 및 유관기관 등 자동차산업 관계자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동차 산업의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방안 세미나’를 열고 노동계에 고용과 임금의 빅딜(big deal)을 제안했다. 안정적 고용을 위해 임금 축소를 수용해 고용과 임금을 맞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일회성 제안에 그치지 않고 노사관계 연구회를 구성해 내년에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파견 근로, 노동 유연성, 임금 제도 등 10개 분야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예정이다.

“산업 정책을 줄곧 담당하면서 느낀 게 ‘노사 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동차 노조가 가장 강성이고 기업에 가장 큰 부담입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현대·기아차는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하겠지만 다른 기업들은 모두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5년간 임금이 50% 오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계속 차를 생산하기는 어렵다는 게 외국계 업체들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반면 노사 문제만 해결되면 국내 생산을 늘리겠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우수 인력에 부품 생태계도 잘 조성되어 있고 물류비도 저렴해 효율적 생산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노동 문제와 함께 가장 큰 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환경 규제다. 국산차 업계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당 97g 이하로 낮춰야 하는데 소형차, 디젤차 위주인 유럽연합(EU)의 규제 수준이 ㎞당 95g인 점과 비교하면 중형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의 생산이 많은 한국으로서는 지나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우리 자동차 산업이 세계 5위이고 현대·기아차가 세계 5위 제조사라면 세계 5위 정도의 규제가 필요한데 최고 수준의 규제를 만들어 놓으면 기업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며 “몸에 좋은 쓴 약은 먹어야겠지만 과잉처방은 오히려 몸에 해롭다”라고 꼬집었다.

노동, 환경규제 등 자동차 산업 핵심 이슈와 관련해 정부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는 실천 가능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외에 그가 임기 동안 또 하나 관심을 쏟는 과제는 국내 최대 국제모터쇼인 서울모터쇼의 변화다. 사실 서울모터쇼는 엇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상하이(上海)모터쇼에 비해 밀려 안방잔치로 전락했다는 평을 받은 지 오래다. 차량보다 과감한 노출 의상을 입은 레이싱 모델에게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주객이 전도된 행사라는 평도 받았다. 하지만 지난 4월 열린 올해 서울모터쇼는 ‘기술은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기차, 안전체험 등 체험형 부스를 많이 만들어 새로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수익 창출을 위해 새로운 시도나 투자보다는 참가업체 유치와 관리에 치중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서울모터쇼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정보기술(IT) 분야와 자동차의 접목을 비롯해 애프터서비스(AS), 보험, 정비 등 관련 산업을 포괄하고 체험, 교육 등을 아울러 경쟁 해외모터쇼보다 아기자기한 모터쇼로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 모터쇼에서 빠져있는 타이어 업체들의 참가도 꼭 성사시킬 생각입니다.”

국내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협회 회장이지만 공적으로 사용하는 업무용 차량(에쿠스) 외에 개인적으로는 구입한 지 7년 된 현대 그랜저 차량을 몰고 다닌다. 그는 “2008년식 그랜저로 현재까지 13만㎞ 정도를 탔다”며 “협회장을 맡으면서 내수 진작 차원에서라도 바꾸려고 했는데 요즘 국산차 품질이 좋아서인지 차가 너무 멀쩡해 그냥 타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장 부임 이후 개인 생활의 변화를 물으니 예상치 않은 안전운전 얘기를 꺼냈다. “사고가 나도 누가 확인하지는 않겠지만 명색이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이고 협회에서 교통 캠페인 등에도 참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전보다 조심해서 운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전운전을 하다 보니 마음도 편해지고 무엇보다 연비를 높이는 데 안전운전만 한 게 없습니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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