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영 / 워싱턴 특파원

외교에서 형식은 내용을 완결짓는 틀이다. 청와대에 의전(儀典) 비서관이라는 직제가 있고, 외교부에 의전장이라는 직책이 있는 이유다. 국빈 방문인지 실무 방문인지에 따라 행사의 ‘격’도 달라진다. 남북이 회담에서 협상 대표의 ‘격’을 따지는 것도 이를 통해 상대를 존중하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이 상대를 신뢰할 만한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기준이 되는 셈으로, 형식이 제대로 갖춰져야 내용 면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불문율이다.

이런 ‘격’의 중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조문(弔問) 외교다. 실제로 미국 백악관은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곧바로 성명을 발표하고 애도를 표했다. 성명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은 미국이 한국 정부 및 한국 국민과 맺고 있는 깨질 수 없는(unbreakable) 관계에 각인돼 있다”면서 한·미 동맹 공고화에 기여한 공로도 언급하고 있다. 동맹 국가의 정상을 지낸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격에 맞는 예우다. 여기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거목에 대한 존경도 물론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26일 국가장으로 치러지는 김 전 대통령 영결식에 보낼 조문단을 구성하는 데에는 구인난을 겪고 있다. 26일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이번 주부터 휴가를 간 인사가 많기 때문이다. 마침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15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로 이어지는 장기 해외 방문을 마치고 23일 오후에야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외교 수장인 존 케리 국무장관은 ‘11·13 파리 연쇄 테러’ 이후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현재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물고 있다. 한국 등 아시아를 담당하는 주요 고위 관리들도 오바마 대통령 순방을 수행하느라 자리를 장기간 비웠다.

이 때문에 미국은 영결식이 얼마 남지 않은 24일(현지시간)까지도 누구를 조문단으로 보낼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까지 비행시간 13시간 남짓에 시차 14시간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빠듯하다. 마크 토너 국무부 부대변인이 최근 브리핑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조문단 파견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다”고 답한 배경이다. 주미 대사관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를 찾은 고위급 인사도 부장관급인 크리스티 케니 국무장관 선임 보좌관과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정도다.

미국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 10명을 파견했다. 한때 미국에 망명했던 민주화 투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 맞는 예우였다.

반면 미국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는 캐슬린 스티븐스 당시 주한 미대사를 단장으로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주외교’를 내세우면서 한·미 관계가 다소 껄끄러웠다는 점이 반영됐다는 것이 당시 외교가의 평가였다. 조문단의 격이 현재의 한·미 동맹을 평가하는 간접적인 척도가 됐던 셈이다.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미 동맹이 최상의 상태라고 선전하고 있다. ‘빛 샐 틈이 없다’는 표현까지 사용할 정도다. 그만큼 한·미 양국은 수사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조문 외교도 그중 하나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지난 7년간의 재임 기간 중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전직 대통령 3명의 서거를 모두 경험하게 되면서 조문단 파견의 격도 비교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경사됐다는 우려를 전달하기에 앞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서 한국이 미국과 함께 ‘항행의 자유’를 주장해 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동맹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형식이 일정 정도에서는 내용을 담보한다.

boyoung22@munhwa.com
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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