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회고
“누구에게나 먼저 손내밀고
젊은이 주장에 귀 기울여”


“현대그룹 신입사원에게 시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뒤 흐뭇해하던 아산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2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 리젠시룸에서 만난 박동규(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고 정주영 회장을 ‘문학을 사랑했던 기업가’로 기억하고 있었다.

박 교수는 30여 년 전 정 회장과 함께 참여했던 ‘해변 시인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어느 날 문득 시인학교를 찾아와 ‘나도 시인학교에 등록할 수 있느냐’면서 직접 등록비 2만 원을 내밀었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정 회장의 첫 모습”이라며 “당시 정 회장은 시인학교에 학생으로 참가해 인간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문학에 대한 정 회장의 남다른 애정은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 회장은 1985년부터 여름철마다 강원 강릉 경포대에서 열린 ‘해변 시인학교’에 참가해 문인들과 어울리며 문학과 인생에 관해 토론을 즐겼다. 수강생들과 시 강의를 듣고 낭독회에도 참여했으며, 주최 측 요청으로 특강에 나서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시(漢詩)를 풀이하기도 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박 교수는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로 현대그룹 신입사원과의 만남을 꼽았다. 그는 “어느 날 정 회장이 현대 신입사원들과 시인들의 만남을 제안했다”며 “그 자리를 통해 정 회장은 신입사원에게 시인의 창조적 상상력과 서정적 자아,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 등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남이 성사된 뒤 신입사원들과 우리는 함께 파티와 연극을 하며 즐겁게 놀았고 다양한 주제로 열띤 토론도 했다”며 “당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정 회장은 ‘역시 꿈이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는 “해변 시인학교에서 정 회장은 누구에게나 먼저 손을 내밀었고 젊은 시인들의 패기 어린 주장에도 늘 귀를 기울였다”며 “손수레를 앞장서서 끌고 가던 모습과 언제나 솔직하고 꾸밈없는 진실한 인간성을 보여주며 함께 어울리던 아산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박목월 시인의 아들이자 현대문학평론 대가인 박 교수는 이날 열린 ‘아산 정주영 탄신 100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회고사를 통해 참석자들과 함께 정 회장의 발자취를 들려줬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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