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의 김영삼 대통령은 고인(故人)이 된 지금 ‘불세출의 영웅’으로서, 민주화를 완성한 ‘위대한 지도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으로 일관했고, 군인정치를 종식시키고 문민정치를 완성한 점에서 적절한 찬사라 하겠다.
그러나 주돈식 조선일보 기자는 ‘문민정부 1천2백일―화려한 출발, 소리 없는 실종’이라는 저서에서 문민정부의 공과(功過)를 해부했다. 김영삼정부 출범 시에는 90% 이상의 지지를 받았으나 말기에는 10% 정도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으며, 역대 대통령의 업적 평가에서는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공과에 대한 평가는 재논의돼야 할 것이다.
문민정부의 탄생은 말썽 많던 3당 합당에서 비롯됐다. 노태우정부가 국회 의석이 부족해 정국 운영을 원만히 할 수가 없게 되자 당시 김영삼 제3당 당수와 김종필 제4당 당수가 정권 나눠 먹기에 합의해 3당 통합이 이뤄졌다. 당시 헌법을 개정해 내각제로 고친 다음 교대로 국무총리를 한다는 밀약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에는 김영삼 여당 총재의 반대와 김대중 야당 총재의 반대로 이 약속은 파기됐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민주화 개혁을 해야 성공한다고 믿어 취임 초에 하나회를 해체해 군부 쿠데타의 싹을 잘랐다. 스스로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공개했고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종용했으며 입법화했다. 또 율곡사업 관련 비리 사건을 조사해 처벌했다. 다음에는 ‘금융 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경제명령’을 공포해 금융실명제를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는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것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집권 초기에 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해직된 전교조 회원들을 사면·복권했고, 회개(悔改)하지 않는 정치범을 석방하거나 북송해 주었다. 또 과격한 시민운동가, 노동운동자 등의 요구까지 인정해 주는 우를 범했다. 이것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불법 폭력시위의 원인이 되고 있다. 1995년에는 5·18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국가보상이 행해졌다. 전직 대통령과 많은 군인이 처벌됐다. 역사바로잡기 법령들이 잘못 이해돼 집회·시위·파업 등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 독일 신문 방송들은 현대자동차 직원의 월급이 독일 자동차회사 직원의 월급보다 많은데도 과격 노동운동을 하고 있으니 한국에 경제 파탄이 올 것으로 예측했다. 그 예측대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기금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김대중정부 들어 국가의 재산을 헐값으로 외국 악덕 기업에 방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영삼정부가 임기 초에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을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임기 말에 비선조직이 활동해 국가기강을 문란케 한 것은 잘못이었다.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으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는 헌법에 위반되는 민족지상주의다. 세계화를 강조한 문민정부가 북한 정권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의 정책을 반대한 것이 북한의 핵무장과 항구 분단, 북한 동포의 고통을 초래하게 된 게 아닌지 두렵다. 김 대통령의 가장 큰 과(過)는 정권 재창조에 실패한 것이다. 문민정부 5년의 공과를 재평가하면서 과는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
고인의 유지처럼 우리 국민은 ‘통합·화합’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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