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를 내려다본 김광도가 차에서 내렸다. 오후 6시 정각, 한시티에는 어둠이 덮이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식당 앞에서 기다리던 정상근이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머리를 끄덕인 김광도가 걸음을 멈추고는 식당 건물을 둘러보았다. ‘아리랑’ 식당 네온 간판이 반짝이고 있다. 통나무 2층 건물로 연건평 400평짜리, 김광도는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금방 견적이 나온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데다 주차장 부지까지 200평을 갖추고 있는 터라 건설비는 150만 달러쯤 들었겠지만 시가로 250만 달러는 될 것이다. 하루 매상이 5만 달러는 나온다. 한정식과 술도 팔았기 때문에 종업원은 30명 정도, 한 달 순이익이 30만 달러는 된다. 1년만 장사하면 투자금 회수, 다음부터는 부(富)를 쌓는다. 그때 옆으로 주영수가 다가왔으므로 김광도는 발을 뗐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앞장선 정상근이 창쪽의 좌석을 가리켰다.

“저기 계십니다.”

김광도는 이쪽을 바라보며 일어서는 네 남녀를 보았다. 둘은 60대쯤의 남녀, 둘은 20대나 30대쯤의 남녀다. 원탁을 중심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김광도와 주영수는 빈자리에 앉았다. 아직 저녁 먹기에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에는 손님이 절반쯤 찼다. 정상근이 일어선 남녀들에게 김광도를 소개했다.

“유라시아그룹 김 회장이십니다.”

김광도가 머리를 숙였을 때 그중 젊은 여자가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전 이옥영이라고 합니다. 여기 두 분은 제 부모님이시고 얘는 제 남동생입니다.”

이번 내란 사건의 해결사가 된 이옥영이다. 그러나 김광도는 모른다. 이옥영을 향해 김광도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이 여자의 배후에는 한랜드 장관이 있다. 장관이 직접 전화를 했고 2시간 전에는 내무부장이 확인까지 한 것이다. 원탁에는 주영수까지 일곱이 둘러앉았다. 정상근은 유라시아그룹 소속의 직원이었다가 이번에 ‘아리랑’ 식당 지배인으로 파견되었다. 김광도가 네 명의 긴장된 시선을 받고는 심호흡을 했다. 이쪽은 VIP 좌석이다. 소음이 적다.

“장관님 지시로 이 식당을 이옥영 씨께 양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색한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여기 서류 일체를 가져왔으니 서명만 해주시면 다 끝납니다. 이 식당은 이옥영 씨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주영수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이옥영 앞에 놓았다. ‘아리랑’ 식당은 이번 내란 동조세력인 압구정파 최영식 회장의 소유였는데 김광도에게 50만 달러를 주고 넘긴 것이다. 그것을 이제 김광도가 이옥영에게 인계하고 있다. 이옥영이 잠자코 서류를 받더니 제 부모와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함께 읽어 보라는 시늉이다. 모두 얼굴이 상기되었고 눈이 번들거리는 것이 애써 흥분을 참고 있는 모습이다.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여기 앉은 정 지배인이 식당 운영을 도와드릴 것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해 주시지요.”

김광도가 명함을 꺼내 이옥영은 물론 부모와 동생한테도 주었다. 서동수가 부탁한 것이다. 누구 명인데 토를 달겠는가? 그때 이옥영이 말했다.

“너무 커요. 저는 이렇게 크고 멋있는 식당인지 몰랐어요.”

이옥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무 과분해요.”

그러더니 심호흡을 하고 나서 서류 밑부분에 힘차게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사인할 서류가 여러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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