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등 고가 차량과의 교통사고 시 과도한 수리비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 18일 ‘고가 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을 발표, 일반 차량 운전자 부담 경감에 나섰다. 지난여름 동부간선도로 인근에서 일어난 승용차 교통사고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수입차 등 고가 차량과의 교통사고 시 과도한 수리비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 18일 ‘고가 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을 발표, 일반 차량 운전자 부담 경감에 나섰다. 지난여름 동부간선도로 인근에서 일어난 승용차 교통사고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車수리비, 평균보다 20% 넘을땐 초과율 따라 보험료 할증
피해차량 렌트비 기준, ‘동종’ 아닌 ‘동급’ 최저요금으로


현대 쏘나타 운전자 A 씨는 최근 스포츠센터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 주차돼 있던 B차량과 부딪혔다. 보험 처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A 씨는 B 씨의 차량을 확인하고 놀라 주저앉았다. B 씨의 차량은 독일에서 온 수입 외제차. 범퍼를 교체하는 수리비만 1억 원이 넘고 동급 차량을 렌트해주는 데 하루 150만 원씩 총 5000만 원이 들었다. A 씨가 가입한 보험의 대물배상 가입금액은 최고 1억 원. A 씨는 B 씨에게 자비로 1억 원 가까이 지급했다. 그동안 A 씨처럼 고가의 수입차와 사고가 나면 ‘수리비 폭탄’을 맞기 일쑤였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 정부가 합동으로 지난 18일 A 씨와 같은 피해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 ‘고가 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일반차량 운전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게 골자인데 저가 차주들의 혜택이 크지 않고 보험사 배만 불린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1 고가車 보험료 인상 유발

지난 2010년을 기점으로 고가 차량이 급증함에 따라 실생활에서 고가 차량과의 교통사고 시 발생하는 각종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고가 차량의 과도한 수리비·렌트비 등이 전체적인 보험료 인상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고가 차량과의 교통사고에 대비해 2억 원 이상의 고액 대물배상 가입자 비중은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해 2010년 18%, 2012년 36%, 2014년 56%로 불어났다. 또 자동차보험의 물적(대물담보+자기차량담보) 손해 증가로 인한 보험사의 영업 손실도 지속적으로 악화돼왔다. 전체 자동차보험의 연간 영업 적자 규모는 2011년만 해도 5000억 원 수준이었으나 2012년 6000억 원, 2013년 9000억 원, 2014년 1조1000억 원으로 해마다 증가하면서 지금은 1조 원대 영업 적자를 초래하고 있다.

2 차주간 형평성 문제

고가 차량과 교통사고 시 저가 차량 차주의 과실이 작아도 결과적으로 더 많은 수리비를 부담해야 하는 형평성 문제는 끊이지 않아 왔다. 특히 고가 차량 사고시, 고가 차량이 초래하는 고가의 수리비 부담이 저가 차량에 전가돼 저가 차량의 보험료율만 올라가는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해 왔다. 일례로, 에쿠스(시가 1억 원)와 아반떼(1000만 원)가 충돌해 각 차량이 모두 전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과실비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반떼 차주(A)와 에쿠스 차주(B)가 상대방에게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금액은 적게는 1.1배에서 많게는 90배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가령 에쿠스 차주의 과실이 90%라고 한다면 A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900만 원, B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1000만 원이다. 하지만 쌍방 과실이 각각 50%라고 하면 A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500만 원으로 줄어드는 데 반해 B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5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반대로 에쿠스 차주의 과실이 10%라고 하면 A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100만 원인데 반해 B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9000만 원에 달한다.

3 고가 수리비 할증료율

차주 간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에 신설되는 제도가 고가 수리비 특별 요율이다. 자기 차량 손해담보에 적용되는 이 요율은 차종별 수리비가 평균 수리비의 120%를 넘을 경우에는 단계별 초과비율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과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특히 평균 수리비에 비해 150% 이상의 수리비가 나올 경우에는 계약 갱신 때 보험료가 15%까지 올라간다. 140% 이상∼150% 미만은 11%, 130% 이상∼140% 미만은 7%, 120% 이상∼130% 미만은 3%씩 각각 보험료가 올라간다.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대다수의 외제차와 일부 국산 고급차의 자차 보험료가 내년 3월부터 최대 15% 오르면서 10만 원가량씩 오를 수 있다. 참고로, 구간별로 차주가 내는 연간 보험료는 지난해 기준으로 120% 미만의 경우 1조3376억 원, 120% 이상∼130% 미만의 경우 3347억 원, 130% 이상∼140% 미만의 경우 68억 원, 140% 이상∼150% 미만의 경우 88억 원, 150% 이상은 5215억 원이어서 고가 차량의 수리비가 평균보다 150% 이상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4 자차보험료 오르는 차종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내년 2분기부터 자기차량 손해담보에 ‘고가수리비 할증료율’이 적용되는 차종은 총 62종이다. 이 가운데 150% 이상 구간에 해당하는 차종이 46종으로 가장 많았으며, 120% 이상∼130% 미만 구간에 9종, 130% 이상∼140% 미만 구간에 2종, 140% 이상∼150% 미만 구간에 5종 등이 속해 있다. 수입차 가운데 수리비가 평균보다 150% 이상 높아 보험료가 15% 오를 수 있는 대상 모델은 모두 38개에 이른다. 여기에는 벤츠·BMW·아우디의 대표 차량이 대부분 포함되고, 포드·혼다·재규어·랜드로버 등의 고가 모델도 들어 있다. 국산차는 한국지엠의 윈스톰·스테이츠맨, 쌍용차의 체어맨W·체어맨W 리무진, 현대차의 제네시스쿠페·뉴에쿠스(리무진)·에쿠스리무진(신형) 등 8종이나 많이 팔리는 모델은 아니다. 금감원과 보험개발원은 특별 요율이 적용되면 연간 897억 원의 보험료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5 미수선수리비 지급 관행

그동안 차 사고가 났을 때 차주가 수리를 원하지 않거나 신속한 보상을 원할 경우, 보험사는 차량 수리 견적서를 받고 현금을 지급해왔다. 이 같은 미수선수리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보상의 신속성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한 방식이나, 허위 견적서 발급을 통한 미수선수리비 과다 청구 등의 부작용 사례가 많았다. 또 차주들이 미수선수리비 수령 후 실제는 수리하지 않고 차후에 다른 사고 발생시 동일 사고에 대해 이중청구할 경우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도 미비했다. 이 때문에 이번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에는 자차 손해에 대한 미수선수리비 지급제도를 폐지하는 한편 미수선수리비 이중청구 방지시스템 구축을 추진한 것이다. 자차사고의 경우 원칙적으로 실제 수리한 경우에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민법 제394조의 금전배상원칙에 따라 대물보상은 제외된다. 대물과 자차가 혼재돼 있는 쌍방과실사고도 제외된다. 보험개발원의 손상차량에 대한 신속한 손해액 산정을 위하여 부품가격·공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표준화한 시스템인 ‘AOS(Automobile Repair Cost Computation On-Line System)’에 미수선수리비 내역과 차량 파손 부위 사진을 보관하고, 이를 보험사와 공유하는 이중청구 방지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6 렌트비 지급 기준은

그동안 대물사고 피해자는 차량 수리기간 중 피해 차량과 동종의 렌터카를 빌리는 데 소요되는 통상의 요금을 보험사에 청구해왔다. 현행 표준약관 지급기준에 제시된 ‘동종의 차량’은 피해 차량과 배기량·제조사·차량모델이 동일한 차량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일부 차량이 오래된 수입차 차주의 경우 차 가격과 상관없이 동종의 신차를 대여받는 등으로 관련 표준약관을 악용해왔다. 도덕적 해이와 초과이득 발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이번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에는 현행 표준약관상 제공하도록 규정한 ‘동종의 차량’을 ‘동급의 차량’의 최저요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개선했다. 동급 차량은 배기량 및 연식이 유사한 차량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BMW 520d 1995㏄ 사고시 유사한 배기량을 가진 차량이 제공된다. 수입차를 타다 사고가 난 차주가 유사한 배기량을 가진 국산차를 렌트 차량으로 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외산차 사고엔 외산차 렌트 차량 제공’이라는 공식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7 렌터카 제공 기간은

현행 기준상 렌트 인정 기간은 수리완료시점(한도 30일)까지로 하되, 기산점을 별도 명시하지 않아 렌트 인정기간이 불명확하다. 일부 사고 피해자는 수리업체에 차량을 입고하지 않은 채 렌트 차량을 이용하는 등 부당한 수리 지연 등의 사례를 발생시키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정비업자에게 차량을 인도해 수리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통상의 수리기간을 렌트기간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와 병행해 통상의 수리기간 산정을 위해 보험개발원에 보험사 데이터베이스를 집적(3년)해 작업시간별, 정비업체별 수리기간의 평균치를 공유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일부 렌터카 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수입차만 보유한 렌터카 업체들의 경우 수입차 부품 유통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방안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8 ‘보험사 배만 불려’ 비판

‘보험사 배만 불리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저가 차량인 국산차 보험료 인하 방안은 이번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량별 수리비가 평균보다 적은 경우에는 오히려 보험료 인하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자동차보험 가입자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또 고가 차량의 과도한 렌트비 비용을 잡기 위해 일률적으로 대차 기준을 ‘동종 차량’이 아니라 ‘동급 차량의 최저요금 수준’으로 규정을 바꾸기로 하면서 고가 차량뿐만 아니라 저가 차량 차주의 렌트비 보상 편익도 낮아지게 됐다. 보험업계의 한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수입차 보험료 할증료율을 최대 15%까지 높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조치”라고 전제한 후 “하지만 렌터카 규정의 경우에는 일반인의 편익을 낮추는 결과도 초래하기 때문에 보완 대책이 없으면 결과적으로 보험사만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고 진단했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저가 차량 차주에게 그만큼 보상해 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중소 손해보험사를 시작으로 2% 안팎의 자동차 보험료 인상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어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불만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9 기대 효과는

이번 고가 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고가 차량이 유발하는 각종 고비용 구조를 전면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고가 차량에 대한 특별요율제도 도입으로 고가 차량과 일반차량 운전자 간의 형평성이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 3∼4월부터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고가 차량과 부딪혔을 때 수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 다음 해 보험료가 올라가는 현상이 많이 축소될 것으로 금융위는 보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일반 차량 운전자들의 보험료가 낮춰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과도한 렌트비 지급방식 개선 등을 통해 현행 고가 차량 관련 고비용 구조의 효율화를 도모할 계획”이라며 “고가 차량이 야기하는 고비용의 보험금 누수가 감소함으로써 일반차량 운전자의 자동차보험료 부담 완화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특히 금융당국과 손해보험업계는 이번 방안이 고가 차량을 이용한 각종 보험사기를 근절하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하고 있다. 미수선수리비 부분과 관련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또 실제로 수리를 한 경우에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바꾸면 보험사기도 원천적으로 근절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의 수익구조도 전체적으로 개선하고, 자동차보험 관련 손실 규모를 줄임으로써 안정적 자동차보험 공급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0 향후 일정은

금융위·국토부·금감원·보험개발원 등은 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 등을 즉시 추진하여 세부과제별 제도 개선을 최대한 신속히 조치할 예정이다. 먼저 경미사고 수리기준 마련은 올해 말까지 국토부와 손보협회가 마련한다. 고가 차량 렌트비 경감을 위한 렌트비 지급기준 및 기간 변경과 관련해서는 금감원이 내년 3월까지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을 개정한다. 미수선수리비 지급 관행 개선을 위해 보험개발원이 내년 6월까지 이중청구 방지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내년 6월까지 보험개발원이 자동차보험료율 신고서 개정을 통해 자차 고가수리비 할증료율을 신설하고, 국토부와 금감원이 경미사고 수리기준을 규범화할 방침이다.
이관범·박정경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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