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 서울대 교수·윤리학

최근 ‘천재 소년’ 송유근 군이 지난달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내용이 지도교수의 과거 논문을 표절(剽竊)했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또, 남의 책을 표지만 바꿔 자신의 저서인 것처럼 출간한 일명 ‘표지갈이’를 한 교수들이 다수 적발돼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왜 이런 문제들이 계속 제기될까.

우선, 우리 학계에서 연구윤리가 주목받고 명확한 지침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남의 것을 ‘적당히’ 베껴서 활용하던 과거의 관행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 임용·승진·연봉 책정 등에서 연구 실적이 중요해지면서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된 학자나 교수들이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연구윤리의 기준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식과 양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별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으로 돼 있어 그것을 이해하는 데 깊은 성찰이나 오랜 탐구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꾸준한 실천과 점검으로 연구윤리를 준수하는 태도가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연구진실성관리국(ORI)에서 발행한 ‘책임 있는 연구 수행에 관한 교육자료’에 나오는 테스트용 구절은 연구윤리의 핵심을 잘 말해준다.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연구가 다음날 지역 신문의 1면에 보도된다고 상상해 본다. 만일 나의 동료·친구·가족이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에 대해 마음이 편안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도록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면, 나는 연구자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한 것이다.’

연구윤리를 강조하는 요즘 풍토와 관련해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대학의 교수 연구 업적 평가 방식이다. 기존 교수들이 호봉제에 따라 봉급을 받는 것과 달리, 최근 임용된 교수들은 대개 연봉제를 적용받는다. 이는 연구를 게을리하거나 무능한 교수와, 연구를 열심히 하거나 뛰어난 교수를 구분함으로써 이른바 교수 사회의 ‘철밥통’을 깨고 연구를 독려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그 자체로 정의로운 일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업적 평가가 주로 양적 평가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다양한 전공 분야로 나뉘고 분야에 따라 연구의 성격이 판이한 학문 세계에서 그 업적을 양으로 평가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45세에 교수로 임용된 후 57세에 첫 저서 ‘순수이성비판’을 내놓기까지 10여 년간 별다른 연구 업적이 없었다. 만일 칸트가 재직하던 대학에서 오늘의 우리와 같은 교수 업적 평가 방식을 적용했더라면 그는 불세출의 이 명저를 내놓지도 못한 채 퇴출됐을 것이다.

학문에 따라서는 논문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열심히 노력해도 1년에 논문 한 편 쓰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 한 편의 논문, 한 권의 저서가 해당 분야의 흐름을 바꿀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수준의 연구 결과를 양산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논문들도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교육 당국과 대학은 양적 평가에 따른 ‘교수 길들이기’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창의적인 연구 업적은 대학의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연구자들에게 양적 지표를 들이대 고만고만한 연구물을 많이 생산하도록 길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연구를 지원하되 되도록 간섭하지 말고 그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살아나도록 기다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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