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번역을 할 때 중요한 것은 톤(tone·어조)”이라며 “작품의 분위기는 톤에 담기고, 번역의 차이 또한 톤에서 생긴다”고 했다.
40년 번역인생 담은 ‘번역 수첩’ 출간… 김화영 교수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2006년)와 파트리크 모디아노(2014년), 유일한 공쿠르상 2회 수상 작가 로맹 가리 그리고 미셸 투르니에, 크리스토프 바타유….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이 작가들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이는 김화영(74) 고려대 명예교수다. 1974년 프랑수아즈 사강의 ‘잃어버린 얼굴’을 시작으로 41년간 총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최근 그의 번역 후기를 엮은 책 ‘김화영의 번역수첩’이 출간됐다. 1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번역은 어렵다”고 말을 꺼냈다. 젊은 시절 재능을 믿고 겁 없이 번역했지만, 날이 갈수록 신중해진다는 고백이다. 그는 “원서를 읽고 느낀 내 감흥을 우리말로 제대로 살렸을 때 비로소 ‘됐다’하고 작업을 마친다”며 “정보를 전달하는 책은 문장을 끊으며 명료하게 우리말로 옮기면 되는 반면, 문학 작품은 내용뿐 아니라 언어구조도 담아내야 해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한국 작품을 프랑스어로 옮기는 역(逆) 번역을 잘 하지 않는다. 도착어가 모국어가 아닐 경우 문법은 정확해도 결코 ‘됐다’는 생각에 미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번역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오직 문학적 가치다. 그는 “한국 독자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출판사에 들고 가 번역을 해보자고 요청해왔다”며 “스스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책은 내지 않는다는 것이 내 신조”라고 했다.
작가와 작품을 고르는 데 신중하기에 그의 번역 후기는 평론에 가깝다. 그 정수를 모은 ‘김화영의 번역수첩’의 40여 편 글은 프랑스 문학 입문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다”고 했다. 문장이 길고 복잡해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기에 원서의 문장구조를 살렸을 것”이라며 “문학은 꼭 쉽게 이해돼야 좋은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가 한국에 소개할 70년대 당시에 유명 작가가 아니었던 클레지오, 모디아노 등은 현재 세계적 작가로 거듭났다. 결론적으로 그의 기준은 보편성을 확보한 셈이다. 최근 눈에 띄는 프랑스 작가를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단숨에 ‘실비 제르맹’이란 이름을 꺼냈다. “그의 작품은 시대와 공간이 특정되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해요. 그런데 읽다보면 우리가 살아온 역사 그 자체입니다.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삶을 서술하는 방식이 독창적이죠.”
김 교수는 기존에 번역을 했던 작품도 수시로 개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령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세 번, ‘페스트’를 두 번 고쳤다. 꼭 오역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는 “번역은 그 시대의 언어에 맞게 언제든 다시 이뤄질 수 있다”며 “문학에 정답이 없는데, 번역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그는 한 출판사의 문제 제기로 ‘이방인’ 번역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관련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불편해하면서도 “얼마 전 학회지에서 그 출판사 책이 오히려 내 번역을 베꼈다는 논문을 본 적이 있다”며 “자기 번역이 옳다고 단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카뮈 전집(전 20권) 개작 얘기부터 꺼냈다. 카뮈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 카뮈학회 이사직을 20년간 역임한 그다. 지난해 프랑스 현지에서 열린 카뮈 탄생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7명 중 그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그렇게 카뮈에 정통해도 부족한 점이 보이는 모양이다. “고유명사 표기법이 달라진 문제도 있지만, 번역이 틀린 부분이 보였습니다. 톤도 이 기회에 좀 살필 계획입니다. 응, 이거는 고쳐야지, 안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