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문을 연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산업단지(공단)다. 수출을 제1의 목표로 경제 발전을 도모했던 1960∼1980년대에 봉제, 전기, 전자 등 경공업, 그리고 가발을 주력품목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수출 1억 달러 시대를 열고, 최초의 무역박람회를 개최했다. 우리 산업이 정보기술(IT)을 주력으로 급속하게 전환되던 1990년대 말 구로공단은 그 명칭을 디지털산업단지로 바꾸고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속속 지식산업센터 빌딩이 들어섰다. 그 역사는 바로 우리나라 근대산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상당 부분은 바로 구로공단에서 시작된 기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우리나라 어디에 살든 가까운 친척 가족 중 한두 명은 구로공단에서 일했을 것이다. 나 역시 내 맏형과 동생이 구로공단에서 일하면서 가족의 생활비와 학비를 보탰다. 한땐 슬프고 힘든 현장이었을지라도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운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다.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 구로공단은 없다. ‘공돌이’ ‘공순이’도 없다. 독일이나 영국에는 수십 곳 있는 산업박물관이 우리나라에는 한 곳도 없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데, 이곳 구로공단 자리에 역사관 혹은 박물관이 선다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산업박물관이 될 수 있다. 나는 벌써 10여 년 전부터 여러 차례 정부에 산업박물관 설립을 건의하기도 하고 호소하기도 했다. 금천구, 서울시, 성공회대와 힘을 합해 구로공단 박물관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몇 년째 진행하고 있지만, 땅도 없고 돈도 없는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미약하다. 산업단지 전체를 박물관이라고 여기고 도보 관광코스를 만들어 역사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상상보다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매우 안타깝게도 이제는 박물관이 들어설 곳이 한 곳밖에 안 남았다. 옛날 공단에 용수를 공급하던 정수장 자리다. 넉넉한 넓이의 국유지인 이 자리만이라도 산업단지의 새로운 젊은 IT 인력을 위한 시설들, 그리고 옛 공단을 기억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어 주기를 기도하듯이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몇 차례에 걸친 일반 매각 입찰과 유찰이 계속되고 있어 조만간 민간에 매각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면 이제 남은 땅은 없다. 공단의 역사도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구로공단은 구로구 산업단지가 아니고 국가 산업단지 제1호다. 절박하고 안타까워하는 구로구 심정의 절반이라도 국가가 가져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성 구로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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