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공적자금관리委 민간위원장


최근 중국의 칭화유니그룹이 자회사를 통해 미국 반도체 회사 샌디스크의 지분을 인수하더니 SK하이닉스의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하는 등 중국의 반도체 관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비록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그 제안 이후 한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였던 마이크론에 대한 지분 참여 작업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마이크론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소문이 시장에 유포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1/3/5 제안’ 또는 ‘1/9/5 제안’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반도체 전문 인력들에 대해 본인이 받던 1년 연봉의 3배를 5년간 보장하겠다는 ‘1/3/5 제안’ 또는 1년 연봉의 9배를 5년간 보장하겠다는 ‘1/9/5 제안’이 나온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어떤 회사인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대들보 같은 회사들 아닌가.

지난 6월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발표한 ‘FT 글로벌 500’ 기업 순위에 한국 회사는 달랑 4개가 포함됐다. 세계 19위와 388위를 기록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269위를 기록한 현대자동차와 460위를 기록한 한국전력이다. 현대자동차는 2014년 150위에서 2015년 269위로 밀렸다. 삼성전자는 2014년 18등에서 2015년 19등으로 순위를 사실상 유지했고, 반도체 전문 회사 SK하이닉스는 2014년 464등에서 2015년 388등으로 76계단이나 뛰어올랐다. 과거에는 국민은행이나 포스코도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이젠 다 탈락하고 남은 건 반도체와 자동차뿐이다. 그런데 이 알토란 같은 반도체산업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는 과거 우리 조선(造船)산업에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나라 조선사에서 주요 업무에 종사하다가 퇴직한 직원이 출근 마지막 날 퇴근하면서 회사 정문을 나서던 순간 중국 기업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좋은 조건으로 다음 날부터 중국에 있는 경쟁사에 배치돼 일을 계속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도면을 빼가는 건 아니지만, 핵심 인력의 지식과 현장 경험이 그대로 중국으로 이전되다 보니 중국 조선산업의 추격은 엄청나게 빨랐다. 우리 조선산업이 급격히 추격당한 것은 상당 부분 이러한 면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 조선산업은 4년여 전까지만 해도 최대의 실적을 냈는데 지금은 구조조정 산업 순위 1위에 오를 정도가 돼 버렸다. 중국의 추격이 이러한 인력 유출을 통해서도 이뤄졌다고 할 때 반도체산업마저 추월당하면 이제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손가락이나 빨아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잘되는 집에는 사람이 모이지만, 가라앉는 배에서는 살길을 찾아 사람들이 탈출한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는 외국 기업들이 진입해 오고 외국 사람들도 이민을 온다. 새로운 법인과 개인이 진입하면서 경제 내에서 회춘이 이뤄진다. 하지만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떤가. 우리 경제에서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 고령화만 진행 중인 게 아니다.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던 핵심 산업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힘을 잃어가면서 기력과 경쟁력이 훼손되는 기업의 노화현상이 두드러진다. 개인과 법인이 동시에 힘을 잃어가는 비상 상황이 닥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 리더들이 먼저 나서서 문제 해결에 힘써야 한다. 퍼주기와 나눠 먹기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를 기업들이 창출하도록 규제를 풀고 미래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자 너무나도 절실한 구호인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야 한다. 위기(危機)가 오고 있는 지금 만일 이러한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응에 실패하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를 우선하는 접근이 절실한 상황이다.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반도체산업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너무도 아쉽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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