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 논설위원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한 번 성공한 경우 그 방법이 계속 통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일컬어 ‘휴브리스(Hubris·오만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류’라고 했다. 한국은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압축 성장에 자만한 나머지 ‘휴브리스병(病)’에 빠지지 않았는지 성찰해 봐야 한다. 개별소비세 인하 문제를 보자. 2004년 카드 대란 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개별소비세 인하는 위기 극복의 효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정부는 지난 8월에 인하했던 고가 가구, 가방, 시계 등 이른바 명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두 달여 만에 백지화했다. 정책 당국자들이 과거 성공을 염두에 두고 이 정책을 도입했다면 이는 착각이다. 고급 소비재의 경우 가격 탄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제대로 짚지 않아 실패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 거시적으로 휴브리스의 우(愚)를 보여주는 것이 의료 분야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게 의료산업을 발전시킨 한국이 스스로의 성공에 자만한 것은 아닌지 반성케 하는 일이 생겼다. 메르스 사태를 비롯해 성형 부작용 폐해,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의 C형 간염 집단 발생 사태 등이 이어졌다. 의료산업 압축 성장의 이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던 문제들이다. 자살률 1위인 한국이 항우울제 사용은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도 나왔다. 사회와 의학계 모두 스트레스와 경쟁으로 찌든 개인들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화근(禍根)을 조기에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는 소득·건강·고용·사회적 지원·지속 가능성 등 5개 영역으로 산출한 ‘고령화 대응 지수’가 최하위를 차지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얼마 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펴낸 ‘압축 성장의 고고학’(한울아카데미)에 따르면 이미 1960년대에 전남과 경남, 경북 일부 지역에서 고령화가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확인됐다. 미래의 국가 우환이 될 고령화 문제가 지방자치단체 인구 변화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셈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미래 트렌드를 예측하지 못하면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법과 제도·행정적 대응으로만 풀려고 할 경우, ‘휴브리스의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참여해 다양한 저출산 고령화 해법을 내놓고 있다. 빅데이터와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조기 진단 시스템 개발,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커지는 ‘고령자 통합(치료+간호) 시장’을 의료 선진화의 토대로 삼자는 제안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한국은 답을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눈뜬 바보’라는 점이다. 고령자 통합 시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다양한 의료 서비스업이 꽃필 수 있어야 한다. 강원도의 산모(産母) 사망률(2013년 기준 10만 명당 27.3명)이 이란(23명)이나 카자흐스탄(26명)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끄러운 통계는 출산 의료 인프라 확충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보여준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야당과 일부 의료계 반대 때문에 정기국회 폐회를 하루 앞둔 8일까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당리당략을 떠나 서비스산업을 살리겠다는 단호한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jinye@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