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 / 고려대 경제학과 및 그린스쿨 교수

올해 제52회 무역의 날 행사가 세계 수출 6위 달성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우울한 모습을 보여줬다. 당장 성장동력의 첨병 역할을 하는 새로운 기업들의 출현이 줄어들었다. 올해 1억 달러 이상 수출을 한 기업들에 수여하는 수출의 탑 대상 기업은 59개였다. 이는 지난해 95개에서 38%나 줄어든 것이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년 106개에서 59개로 줄어든 2009년과 같다.

단순히 대상 기업 수가 줄어 우울하다는 게 아니다. 우리 경제의 문제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근본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점에 경험한 위기의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는 외부에 의한 충격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서 우리 경제의 체질에서 극복 가능한 단기적 현상이라는 인식이 더 컸다.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이 줄어들고 수입은 그 폭이 더 큰, 규모 축소형 경제 구조로 바뀌고 있다. 수출의 주력 산업인 조선·철강·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수출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이러한 추이는 계속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과의 경쟁으로 국제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산업이 수출 주력 산업으로서의 위치가 25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어서 경제 동력이 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있어서 한국 제품 시장과는 다르다는 과거 해석은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세계 3위 점유율에 올라 애플을 추격하고 있는 샤오미의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단말기 제품을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판매 불가 판정을 받은 샤오미 체중계 문제는 거의 코미디급이다. 한국에서는 그램/킬로그램 표시만 가능한데, 파운드 등 다른 무게 단위도 동시에 표시 가능하다는 이유다. 오히려 이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 적합한 것이다.

주력산업의 성장동력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없다면 한국 경제라는 거대한 함선은 서서히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고도성장의 경험에서 축적되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새로운 한국형 산업들이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무역의 날에 관심을 받은 화장품 산업이다. 만년 무역적자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 흑자 수출품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는 과거 고도성장을 경험으로 위상이 높아져 나타난 한류 현상과 그동안 축적된 기술에 의해 높은 질의 화장품 생산이 가능하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애플을 놀라게 한 삼성페이와 같은 소프트웨어 제품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라는 함선의 침몰을 막을 수 있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열린 자세다. 자신들이 한국 경제를 끌어가야 한다는 과거의 정부 주도형 발전 전략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새 우리 경제는 너무 비대해졌고 민간 부문의 국제 경쟁력은 정부를 앞선 지 오래다. 아직도 경기침체라는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정부 주도 발전 전략에서 탈피하고, 정부는 민간에 넓은 운동장을 제공해 국제 경쟁자들과 마음껏 뛰게 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나 간섭은 운동장 울타리 하나로 충분하다. 정부는 모두 다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민간이 만드는 성과를 가지고 저출산·고령화, 빈곤·양극화 등 공공적 문제 해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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