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 해 전 세계는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는 이슬람국가(IS) 문제로 시끄러웠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 단단히 똬리를 튼 뒤 무고한 시민의 목을 자르고 산 채로 불태우는 IS의 악행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게 11·13 파리 연쇄 테러 이전까지의 상황이다. 그런데 파리 테러 이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과 영국, 러시아 정상과 연쇄 회동을 주도하면서 IS 척결 국제 공조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상한 점은 주요 2개국(G2)이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P5) 중의 하나인 중국이 협의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중국이 빠진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프랑스는 중국 대신 독일을 협력 파트너로 삼았다. 긴급 현안이 발생했을 때 P5 국가들은 중국을 주요 협의국으로 보지 않으며 중국 또한 그것을 당연시한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지난 11월 하순 서울에서 열린 한·중 공공외교포럼에서 중국 측 인사들과 파리 테러 얘기를 나누면서 프랑스 주도의 IS 격퇴 국제 공조에 중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인사들은 “우리가 왜?”라며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주요 2개국이지 않냐”고 했더니 “우리는 G2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G2라는 용어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해 세계 2위가 된 2010년부터 쓰이고 있는데 유독 일본에서는 사용이 금기시된다. 일본인들의 행태는 열패감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가지만 중국에서도 이 용어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외였다. 회의 후 한 교수에게 물었더니 “우리는 아직 개발도상국”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겸양의 표현 같지만, 슈퍼파워 미국이 감당하는 국제적 의무를 분담하지 않겠다는 게 중국의 속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G2 규정에 대해선 거부하면서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미국 측에 신형대국관계론을 설파했다. 공교롭게도 그럴 때마다 동아시아에서는 파란이 일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캘리포니아 서니랜즈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론을 처음 제안했던 2013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 파동이 일어났고, 지난 9월 시 주석이 워싱턴 방문 때 재차 신형대국관계론을 주장한 뒤엔 남중국해 인공섬 갈등이 불거졌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역사가 로버트 케이건은 저서 ‘미국이 만든 세계’(The World America Made)에서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유례없는 번영을 구가했는데 그 근저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식 세계질서와 가치체계가 깔려있다고 썼다. 슈퍼파워 미국이 제공하는 그와 같은 국제적 공공재 덕분에 항행의 자유가 보장됐고 자유교역을 통한 국제 번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신형대국으로 존중받길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국제적 부담을 져야 한다. 의무는 지지 않으면서 주변국들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대국의 길이 아니다. 안팎으로 뒤숭숭했던 올해, 우리가 그나마 이 정도의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파워 덕분이다. 시진핑의 중국이 21세기 신형대국이 되기 위해선 2차 대전 후 미국이 걸어온 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muse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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