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과학기술문화지인 ‘와이어드’의 창업자이자 초대 편집장을 지내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로부터 ‘위대한 사상가’라는 칭호를 얻은 저자가 900쪽에 육박하는 ‘통제 불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명쾌하다. ‘기계를 제어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수많은 SF영화에서 흔히 다뤄지는 소재는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지능을 갖춘 후 인간을 억압하려 한다는 설정은 SF영화의 고전이다. 이를 막으려 기계를 제어하려는 인간에게 저자는 “제어하지 않는 것이 기계를 현명하게 제어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간에는 인간과 기계가 더 이상 주종 관계에 놓인 존재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통제 불능’의 첫 번째 챕터는 ‘만들어진 것들과 태어난 것들’이다. 기계가 전자고 인간이 후자다. ‘내가 배출한 소변과 대변은 배관과 파이프, 식물, 습지 미생물 등으로 이뤄진 시스템을 거치며 섭취할 수 있는 것으로 탈바꿈한다. (중략) 생명체와 인공물이 결합해 하나의 견고한 시스템을 이루었다’는 본문 내용처럼 우리 주변에는 태어난 것 못지않게 만들어진 것이 많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우선순위를 매기기는 어렵다. 이렇듯 인간과 기계가 공생하는 미래 생태계는 과거의 가치관으로 재단할 수 없다.
이 방대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 ‘매트릭스’를 예로 들 필요가 있다. ‘통제 불능’은 워쇼스키 감독이 ‘매트릭스’를 만들게 된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연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 역시 이 책을 읽은 후 대본리딩에 참여했던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분류되던 지능과 생각을 가진 기계들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미래에 등장할 것이고, 이는 ‘인공 생명’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살아있는 것 같은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인공물이다.
그 동안 태어난 것들이 만들어진 것들을 구축해 왔다면, 저자는 “다가오는 신생물학 시대에는 우리가 의존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은 모두 만들어지기보다 태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건물, 살아있는 실리콘 중합체, 질병 치료를 위해 생산된 바이러스, 사이보그 신체 부위, 시뮬레이션한 성격 등 인간과 기계가 뒤섞이며 기계 역시 태어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저항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생명의 힘을 창조된 기계에 불어넣으면 우리는 기계들을 제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계들은 야생성을 획득하고, 또한 야생에 수반되는 의외성을 띠게 된다. 이것이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지만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만들어진 것들의 세계는 곧 태어난 것들의 세계와 비슷해질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거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