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83세로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강단 있는 소신파 정치인의 상징이었다.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1963년 정계에 입문해 두 차례나 국회의장을 지낸 8선 의원으로서 평소 바른말을 잘하고 올곧은 자세를 유지해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5·16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출입하던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이 전 의장은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울릉도를 시찰할 때 그가 탄 배에 몰래 승선했다. 우격다짐으로 박 의장과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 이 전 의장은 자연스럽게 박 의장을 인터뷰하게 된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박 의장을 만났고 그의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에 대한 구상을 들었으며 그 집념에 매료됐다. “이런 분이 우리나라를 맡으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던 1963년 추석날 밤 그는 박 의장을 찾아갔다. 이 전 의장은 생전 문화일보와의 ‘파워 인터뷰’에서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하니까 이 양반(박정희)이 깜짝 놀라며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좋아하더라. 왜 박 의장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국민 앞에 밝힐 기회를 달라고 하니까 박 의장이 그 자리에서 이후락 씨에게 전화했고, 즉각 유세 멤버로 합류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승만정부 시절 국회의사당 기자석에서 “자유당, 이 X들아”라고 외치다 당시 곽상훈 의장으로부터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세요”라는 주의를 받아 속기록에 이름이 올랐다.
이 전 의장은 초선 국회의원 시절인 1964년 ‘남북가족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 결의안으로 이 전 의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용공’ 인사로 몰려 구속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탄생에 기여했던 그는 1969년 3선개헌 당시에는 이에 반대하다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암살당할 뻔했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김형욱은 물러나야 한다”고 발언했고, 이에 앙심을 품은 김 부장이 중정 간부 두 사람을 불러 국가기밀문서 보관함에서 수류탄과 권총을 꺼내주면서 해치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를 눈치챈 당시 김성곤 의원이 박 전 대통령에게 이를 알렸고,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부장에게 전화해 “이만섭 의원 몸에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지난해 펴낸 회고록 ‘정치는 가슴으로’에서 이 전 의장은 ‘국회의장 재임 중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예산안 강행 처리를 지시했지만 날치기 처리는 안 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전 의장은 “내가 과거에 굉장히 어려울 때 의장직 사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나라를 위해 언제든 그만둔다는 소신을 가졌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 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 씨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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