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장편 ‘바느질 하는 여자’ 낸 김숨

“업을 만들지 않는 일이지만, 업으로 삼아야 하는 일이 바느질이야.”

소설가 김숨(41·사진)이 일곱 번째 장편 ‘바느질 하는 여자’를 냈다. 그의 작품은 요즘 곧잘 수식어로 붙는 ‘트렌디(trendy)’와 거리가 있다. 미싱으로 사흘이면 만드는 누비옷을 석 달 동안 바늘로 한 땀 한 땀 짓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것도 630쪽(200자 원고지 2200장)에 달하는 분량으로 담았다. 유행가도 일주일을 못 가고, 책 한 권 우직하게 읽어내지 못해 소설마저 짧아지는 시대 흐름에 저항하듯….


15일 문화일보사에서 만난 김 작가는 “바느질이라는 행위가 전해주는 숭고함이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왔다”고 했다. 바늘 잡는 법도 몰랐던 그는 우연히 바느질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인터뷰를 본 후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빠져들었다. 바느질은 단순히 옷 짓는 행위를 뜻하지 않았다. 배냇저고리부터 수의까지 생과 사를 담아내는 옷은 그네들의 웃음이자 눈물, 생계수단이자 예술이었다.

김 작가는 특히 누비질에 관심이 갔다. 두 겹의 옷감과 그 사이를 채운 충전재에 동시에 바늘땀을 넣어야 하는 누비질은 다른 바느질 기법보다 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3㎝ 누비바늘로 3㎜의 바늘땀을 수없이 새겨나가는 고독의 작업. 그는 “자수가 시라면 누비질은 장편소설을 쓰는 것과 닮았다”고 했다.

소설 속 과부 어머니는 이 누비질로 성(姓)이 다른 두 딸 금택과 화순을 키워냈다. 대구나 경주 같은 시내로 나가 한복집을 낼 기회도 마다하고 그는 시골의 우물집에서 고집스럽게 작업을 이어갔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단골 손님 위주, 일 년에 짓는 누비옷은 4∼5벌에 불과했다.

두 딸은 그런 어머니에게 존경과 두려움, 원망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성인이 된 후 어머니의 뒤를 잇길 원한 금택은 집에 남았고, 화순은 대학 진학을 위해 도시로 떠났다. 의상학도가 된 화순은 “어머니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라며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나려 한다. 금택은 그런 화순의 말에 모욕을 느낀다. 아버지가 다른 만큼 기질도 다른 자매가 형성하는 질투와 대립은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소설을 이끈다.

절정은 한때 어머니의 제자였던 재숙이 15년 만에 성공한 한복 사업가로 돌아온 순간. 전통 누비 연구소를 차린 재숙은 풍양 조씨 무덤에서 출토된 쓰개 장옷(조선시대 아녀자들이 머리에 쓰고 다니던 옷)을 복원하기 위해 어머니의 누비질을 돈으로 사려 한다. 외부에는 재숙이 복원자로 알려질 게 뻔했다. 금택은 어머니가 바느질품을 파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해 거부할 것을 청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해야 할 일이면 해야지”라며 제안을 수락한다. 어머니는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바늘땀을 놓는 것을 유일한 요구 조건으로 건다. 이용당한다는 계산 없이 옷의 복원을 자신의 마지막 임무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랜 바느질로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은 그에게는 무모한 일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작업을 끝낸 뒤 건강을 잃고 치매에 걸린다. 평생 손에 쥐어온 바늘의 기능도 잊는다. 두 딸은 어머니의 수의를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바늘과 실을 맞잡는다.

소설 속 어머니의 모습은 자주 김 작가에 투영된다. 3년새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연달아 받은 그는 특유의 조밀한 언어와 구성으로 이번 작품을 직조해냈다.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 바느질 공방을 다니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났다. 김 작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내년 봄부터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할 예정인 장편 ‘한 명’이다. 그는 앞서 여섯 번째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을 통해 여성의 문제를 다뤘다. 최근 유독 여성의 삶에 천착하고 있는 것. “남성을 주인공으로 쓸 때 소설이 더 잘 써진다”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들에게 연민의 시선이 간다”고 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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