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 논설위원

‘중도(中道)주의’ 즉 한국판 ‘제3의 길’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안철수 의원이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정권교체를 이룰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신당(新黨) 창당을 선언했다. 지난해 2월 17일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지 불과 13일 만에 신당 창당을 포기한 전례를 보면 여전히 미덥지 않다. 하도 ‘철수(撤收)’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제 안 의원이 뭘 하겠다고 하면 언제쯤 포기할까 하는 우려가 먼저 든다. 안 의원이 탈당했음에도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 선뜻 동반 탈당을 선언하지 못하는 것도 ‘리더 안철수’에 대한 신뢰가 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 가다가 “여기가 아닌가봐” 하면 낭패다.

정치 이론상으로 보면 안 의원이 표방한 제3의 길이 성공할 여지는 있다. 영국 노동당 출신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주창해 20세기 말∼21세기 초를 풍미했던 제3의 길은 한국과 같이 극단화된 양당체제가 정립된 곳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 지지가 40%대, 새정치연합은 20%, 그리고 나머지 무당파가 40%를 차지한다. 집권 여당은 오직 청와대 눈치만 보고 ‘진실한 사람’만 꿈꾸고 있으니 미래를 맡기기에는 불안하다.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안을 대통령의 호통 한마디에 스스로 부인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고 이를 창피해 하지도 않는다.

정부·여당의 불행은 자신들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야당은 국가 발전, 민생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에만 충실하다. 나라가 망해도 자신들만 집권하면 된다는 이기주의에 빠져 사사건건 발목잡기에 몰두해 있다. 심지어 폭력시위대에 의해 공권력이 무참히 유린됐는 데도 시위대만 비호하니 나라를 맡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야의 지긋지긋한 정쟁에 신물이 난 중간지대의 국민으로서는 마음을 줄 곳이 없던 차에 중도를 표방한 정당의 출현은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을 둘러봐도 중도주의가 성공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올해 각국에서 벌어진 선거에서 극우, 극좌 정당이 돌풍을 일으키고 중도가 몰락했다. 경제불황과 테러의 위협 속에 과감한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는 기회주의, 무능(無能)의 대명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만들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은 그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쓴 ‘안철수의 생각’ 등 저서와 발언으로 보면 안보에서는 보수, 정치에서는 ‘낡은 진보 청산’, 경제는 ‘공정 경제’ 등의 대략적인 것만 나와 있지 구체적인 정책 노선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광화문 폭력시위나 노동개혁 입법 등 현안들에 대해 그가 무슨 입장을 가졌는지 국민은 잘 알지 못한다.

탈당 직후에는 친노 패권주의와의 싸움에도 밀려나 ‘호랑이 굴’에서 나온 것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이 일시적으로 형성될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국민은 안 의원이 기성 정치권과 무엇이 다르고 얼마나 유능한지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국민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지도 관심이다. 사실 정책 하나하나는 모두 진영논리와 이념이 격돌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비양시(兩非兩是)론은 기회주의로 비칠 수밖에 없으며 기존 여야가 양쪽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맞붙을 때는 자칫 존재감이 상실될 수 있다.

지난해 신당 창당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다른 안철수’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색깔의 인물들이 모이고 어떤 정책을 펼쳐 내느냐가 결국 안철수 신당이 성공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을 서두르다 보면 퇴출돼야 할 의원들을 되살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기존 정당이나 똑같다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제3의 길은 실패의 길이 될 수 있다. 이제 안 의원에겐 1년 전 가장 든든한 배경이었던 ‘안철수 현상’도 없고 20∼30%의 지지도 없다. 함께 끝까지 갈 의원도 없다. 그야말로 춥고 배고픈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다. 오직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여망만 믿고 갈 수밖에 없다.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오직 한국 정치를 바꾸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걸어간다면 그 보상은 반드시 주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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