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화가 채용신이 1911년 그린 ‘황현 초상’(왼쪽)과 풍속화가 김준근이 19세기 말 그린 ‘머리 얹는 모양’(오른쪽). 안경다리를 귀에 걸치지 않고 건(巾) 사이에 끼워 고정시킨 황현의 안경, 유리거울로 머리를 단장하는 조선 여인들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개인소장,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인물화가 채용신이 1911년 그린 ‘황현 초상’(왼쪽)과 풍속화가 김준근이 19세기 말 그린 ‘머리 얹는 모양’(오른쪽). 안경다리를 귀에 걸치지 않고 건(巾) 사이에 끼워 고정시킨 황현의 안경, 유리거울로 머리를 단장하는 조선 여인들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개인소장,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안경은 발명자를 알 수 없으나, 13세기 말경 유리 생산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에서 널리 사용됐다. 안경의 존재가 조선에 알려진 것은 16세기 말로 추정된다. 최초의 기록은 이호민이 1606년 쓴 ‘안경명(眼鏡銘)’. “화인(중국인)이 밝고 깨끗한 양의 뿔을 사용해 두 눈 모양으로 만드는데, (중략) 이것을 안경이라 부른다”고 밝혔다. 이어 이수광도 1614년 ‘지봉유설’을 통해 “안경: 노년에 책을 보면 작은 글자가 크게 보인다”고 썼다.

사은사(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외국에 보낸 사신) 김성일이 쓴 것으로 알려진 안경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만약 그가 쓴 것이 맞는다면 이는 1577년 방문한 북경이나 1590년 통신사 부사(副使)로 다녀온 일본에서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안경은 경주 인근에서 수정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주로 북경에서 들어왔다. ‘애체(애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구름이 성한 모양, 무언가 잘 보이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지금처럼 눈에 안경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안경에 눈을 맞추는 방식으로 착용했다. ‘삼십전경(三十前鏡)’, ‘육십경(六十鏡)’ 등 이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때 나이에 따라 미리 제작된 듯하다. 안경은 17세기부터 양반의 필수품이 됐고, 19세기에는 전 계층으로 퍼졌다. 정선, 최북, 정약용 등이 대표적인 ‘안경’인이다. 18세기 후반 학계에 엄청난 분량의 저술이 쏟아진 것에 안경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왕들도 안경을 썼다. 최초로 안경을 쓴 왕은 숙종이다. 숙종의 시력은 영조와 사도세자에게도 유전됐다. 하지만 영조는 안경을 쓴 반면, 영조보다 더 근시였던 것으로 알려진 사도세자는 안경을 썼다는 기록이 없다. 영조는 신하들에게 세자가 서연(書筵·왕세자에게 경서를 강론하던 자리) 때 안경을 쓰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며 그에게 안경의 존재를 알리지 말라고 명한다. 왕들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왕은 의관을 정제하고 많은 사람이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보게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안경이 “채신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하가 왕 앞에서 허락 없이 안경을 쓸 수 없었고, 젊은이가 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다. 19세기 풍양 조씨 세도의 핵심이었던 조병구(1801∼1845)는 헌종에게 안경 지적을 받고 고민 끝에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안경보다 더 복잡한 도구인 망원경은 1631년 조선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다. 진주사(중국에 임시로 보낸 사신)로 북경에 파견된 정두원이 천리경, 서양대포, 자명종 등을 가져와 인조에게 바쳤다. 하지만 이 망원경은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그로부터 30년 뒤 현종 때 남인의 거두 윤휴의 문집 ‘백호전서’에서 ‘망원경’이란 단어가 등장한 이후 다시 80년이 지나야 망원경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744년 관상감(천문학과 지리학 등을 담당하던 관서) 관원 김태서가 북경에서 일식을 관찰할 수 있는 대천리경을 구입해 영조에게 바친 것. 하지만 영조는 규일영(窺日影)이라 이름 붙은 이 망원경을 부숴버린다. 그는 태양을 곧바로 쳐다보는 것이 매우 불경한 일이라 했다. 이는 당시의 전체 관측에 대한 조선의 과학 수준을 드러낸다. 망원경은 조선에 들어온 뒤 천문학적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전쟁과 항해의 목적으로도 쓰이지 못했다.

책은 안경, 망원경과 함께 유리거울, 자명, 양금 등 조선에 들어온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의 역사를 밝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건 전래 기록을 파헤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조선의 뒷골목 풍경’ ‘열녀의 탄생’ 등으로 잘 알려진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물건을 따라가는 동안 이들이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과 조선 후기의 과학·기술적 인식 수준 등도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사상과 자연의 물질뿐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든 물건 역시 역사를 바꾼다. 망원경은 천체 관측과 대항해를 가능케 했고, 자명종은 근대산업사회의 노동시간 측정, 유리거울은 회화에 영향을 줬다. 조선은 이들 물건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고, 원리에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자체 제조기술도 부족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조선은 서양의 물건들을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선택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결론. 독자는 이 책에서 조선과 만난 서양의 물건들을 통해 두루 조선의 역사를 살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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