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작의 ‘고스트’ 연작. 붉은색 조명 아래 반투명 비누로 원본의 형태만 남겨 복제와 변형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다.
신미경작의 ‘고스트’ 연작. 붉은색 조명 아래 반투명 비누로 원본의 형태만 남겨 복제와 변형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다.
중국 진출 2년맞은 ‘상하이 학고재’ 는 지금…백남준展·단색화展 등 주목받아
내년 1월까지 신미경 작가 개인展
“한국작가들 작품 가격 더 오를 것”


한류의 힘을 믿고 너도나도 중국에 진출했던 갤러리들이 2년여 전 대부분 철수할 때 학고재는 거꾸로 중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이라는 상하이(上海)에 닻을 내렸다. 2013년 12월 20일이었다. 당시 학고재의 우찬규 회장은 ‘남이 버리면 취하고 남이 취하면 준다 (人棄我取 人取我與)’는 중국 사기(史記)의 고사를 예로 들며 상하이 진출을 강행했다. 그리고 2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상하이 학고재는 그동안 10여 회의 전시를 현지에서 개최했다. 중국 컬렉터들의 눈길을 끈 첫 전시는 2014년 9월 12일부터 11월 2일까지 연 ‘백남준을 상하이에서 만나다’전이었다. 중국 미술전문지 ‘예술재경’은 미디어아트 선구자 백남준을 집중 조명한 이 전시를 ‘중국에서 가장 교훈적인 전시’로 선정했다. 같은 해 12월 20일부터 올해 2월 8일까지 ‘생성의 자유’를 주제로 한 이우환, 하종현, 정상화 등 한국 단색화전도 주목을 받았다. 중국 본토에서 단색화전은 처음이었다. 또 학고재가 기획해 지난해 8월 29일부터 1개월간 항저우(杭州) 삼상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전은 백남준, 이우환부터 김기라, 장종완 등 12명의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총망라해 관심을 받았다. 학고재는 이 3개의 전시를 상하이 학고재 개관 후 가장 성공적인 전시로 꼽고 있다.

한국 현대 작가의 작품 가격이 중국 작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가 척박한 중국 현지에서 그처럼 고군분투해온 상하이 학고재가 이번에는 개관 2주년을 기념해 ‘비누’를 이용한 조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신미경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신 작가는 지난 19일 개막해 1월 3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 중국 도자기, 불상 등을 부드럽고 무른 비누로 ‘번역’(제작)해 서로 다른 문화와 흐르는 시간 속에 가치의 영속성을 묻는 ‘트랜슬래이션’ 연작과 화장실에 설치했던 비누 조각을 수거해 전시하는 ‘화장실 프로젝트’, 도자기의 견고성과 장식성은 배제한 채 반투명 비누로 원본의 형태만 남겨 복제와 변형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한 ‘고스트 시리즈(Ghost Series)’ 등을 선보인다.

특히 화장실 프로젝트의 경우 관객 참여예술의 하나로 공공화장실에 비누로 만든 불상 등을 비치해 사용하게 한 후 녹아내리고, 뭉개지고, 떨어져 나간 비누를 다시 수거해 전시하는 것이어서 현지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현지 미술평론가 두안쥔(段君)은 전시 서문에서 “신 작가의 작품은 ‘예술품은 결코 소모되지 않는다’는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의 정의에 반기를 드는 예술행위로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20일 상하이 현지에서 만난 우찬규 회장은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가 짧은 만큼 한국 미술이 충분히 중국에서도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화장실 프로젝트를 비롯한 신 작가의 이색적인 전시에도 벌써 현지인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 회장은 상하이 갤러리 개관 2년의 소감을 묻자 “현지의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술 한류가 머나먼 꿈만은 아니다. 지난달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딜리아니의 나부상을 무려 1972억 원에 사들인 류이첸(劉益謙·52) 신리이(新理益)그룹 회장의 아내로 상하이 롱(龍)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왕웨이(王薇)는 19일 기자와 만나 “한국 현대 작가 중 김환기, 백남준, 박서보, 이우환 등을 좋아한다”며 “미국에서도 관심이 큰 만큼 앞으로 더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학고재 등 한국 갤러리 관계자들에게는 고무적인 얘기다.

상하이 = 글·사진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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