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우리네 어르신들이 식사자리에서 참 복스럽다고 칭찬하는 그런 경우다. 또 여흥을 즐기는 자리에는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 차분하고 조용하다가도 한 번 흥겨운 자리가 만들어지면 언제 저런 끼가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구성지게 잘 놀 줄 아는 경우다. 모든 ‘자리’에서 그 상황과 완벽하게 조응하여 자리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존재한다. 이런 능력을 동의학에서는 ‘구미지방(口味地方)’이라고 한다.
‘입(口)으로 맛본다(味)’는 것은 직접 체험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옴팡지게 체험하고 나면 흔히 ‘그 바닥의 쓴맛 단맛을 다 봤다’고 이야기한다. ‘맛’이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아주 구체적인 감흥(感興)이다. 직접 먹어봐야만 느낄 수 있는 그 맛이 있다. 감성적 믿음(信)이 있고 논리적 이해(解)가 있고 여러 다양한 시도(行)가 있어도 증명(證) 가능한 단 하나의 형식이 바로 ‘맛’이다. 구체적인 맛이 느껴지는 자기체험, 그것을 ‘구미(口味)’라고 한다. ‘지방(地方)’이란 그러한 체험들이 살아 숨 쉬는 생활현장이다. 요컨대 ‘구미지방’이란 어느 현장이든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부대껴가며 그 자리의 바탕 생리를 맛으로 느끼고 그 바닥의 노하우를 체득해갈 줄 아는 인간의 적응능력을 의미한다.
그렇게 ‘현장의 맛’을 아는 인간의 생활태도를 단중(端重)하다고 한다. ‘단중’이란 매듭이 단정하고 야무지다는 뜻이다. 하나의 현장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매사에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끊는 것, 마무리가 확실해야 한다. 현장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직접 해보고,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전혀 안 될 것 같았던 일이 지금 해보니 드라마틱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충분히 다 될 것 같았던 일이 막상 하려고 하니까 꿈쩍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다 현장의 맛이다. 그 깊은 맛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소위 내가 어느 영역에서든 무언가를 좀 해봤다, 할 줄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행위와 행위 사이, 일과 일 사이의 매듭이 분명해야 한다. 한번 시작한 일은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마무리 짓는 것, 그 단단한 매듭들이 쌓여서 우리가 현장이라고 부르는 삶의 그물망이 튼튼하게 짜지는 것이다.
가상(virtual)의 세계 속에서 더 많은 밥과 고기가 나오는 시절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직접 체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생활세계를 꾸려나간다. 알약 하나면 사과나 각종 과일에 든 비타민 등 영양소를 수십 배 이상 섭취할 수 있어도, 사과 하나를 직접 맛보는 체험은 알약을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감흥을 준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현장의 맛을 회복할 수 있는, 책임과 노하우의 균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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