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60)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미술과 교수는 조각가이면서,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개념(槪念)미술’ 작가로 흔히 분류된다. 미술·음악·문학·철학 등을 넘나들고 아우르며 새로운 조형적 시도를 거듭하는 그의 작업을 두고, 미술평론가 윤난지는 “예술가가 사라진 시대의 미술에 대해 말하는 메타 미술”이라고도 표현한다. 본질적 관심은 ‘휴머니즘’이라고 밝힌 그의 작품들은 제목부터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나는 어차피 상상을 먹고 산다’ ‘망치의 사랑’ ‘죄 많은 솔’ ‘기억의 국자’ ‘먼 곳의 물’ ‘무쇠에게 꽃을 가르치다’ ‘사소한 사건’ ‘49개의 방’ ‘그 남자의 가방’ ‘보이지 않는 문’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등.
그런 그가 서울대 미대 조소과 1학년 때 읽은 마종기의 시 제목을 주제로 삼은 전시회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9월 15일 시작해 내년 2월 14일까지 이어간다. ‘동심원 안에서 헤엄치며,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고립과 단절의 운명’을 나타냈다는 ‘아홉 마리 금붕어’를 비롯해 8개의 작품을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등 국내외 명작 소설을 관람객 1000명이 예약 후 각기 한 시간씩 이어서 고립된 ‘필경사의 방’에 앉아 필사(筆寫)하게 하는 작품 ‘1000명의 책’에 대한 그의 ‘작업 노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누구나 한때는 아기였던 시절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글쓰기를 배웠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모습 속에는 우리가 아직 어린아이였던 때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8600개의 못이 박힌 벽에 잊어버린 것, 그리운 것 등을 관람객이 쪽지에 적어 붙이게 한 작품 ‘기억의 벽’은 ‘마음의 여유’ ‘친구’ ‘어린 시절’ ‘고향 흙냄새’ ‘5학년 때의 나’ 등으로 채워지는 중이다. 묵은해를 보내거나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안규철의 ‘안 보이는 나라’를 만나는 것은 더더욱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그의 이런 말도 곱씹어 보며. “발길에 치이고 입에 발린 게 사랑인 이곳에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런 사랑 말고 다른 사랑이 있을 거라고, 그런 사랑의 나라를 상상해보자고 말하는 것은 무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다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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