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개성을 표현한다는 말은 식상해진지 오래지만 튜닝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가격도 문제인 데다 자칫 ‘날티’나 ‘싼티’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자 욕구를 파고들어 최근 완성차 업계에서는 제작 단계부터 맞춤형 차량을 내놓는 게 화두가 됐다.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현상에는 ‘억’ 소리 나는 럭셔리 브랜드는 물론 대중 브랜드까지 예외가 아니다.
커스터마이징 마케팅의 유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의 EQ900이 우선 꼽힌다. 무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우리나라 최고급 세단의 보수적인 색채를 비로소 벗어나 소비자에게 폭 넓은 선택권을 부여했다.
제네시스 EQ900의 다양한 실내
외장 컬러 8종, 내장 컬러 5종뿐 아니라 내장재로 쓰이는 리얼 우드 색상도 5종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조합돼 나올 수 있는 차량은 무려 72종에 이른다. 기존 에쿠스의 조합이 6종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무려 12배가 늘어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럭셔리 브랜드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치 중 개인화, 희소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기존 에쿠스의 생산방식과 비교하면 사실상 주문생산 방식에 더 가까울 정도로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작은 체급의 국산차에서는 맞춤형 차량 제작이 낯설지 않은 얘기다. 2013년 출시된 올뉴 쏘울은 다른 색상의 휠커버로 교체할 수 있는 ‘18인치 체인저블 컬러 휠’과 차체 색상과 지붕 색상이 다른 ‘투톤 루프’, 그린존·브라운존 등 독특한 실내 색상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100여 종류의 차종이 탄생한다는 게 기아차 측의 설명이다.
소형 SUV 열풍의 선구자 역할을 한 르노삼성 QM3도 커스터마이징 전략이 유난히 눈에 띄는 차다. 오렌지, 아이보리 등 이전 국내 생산차량에서 볼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내외장 컬러들이 조합되는 식이다. 차체와 루프의 색상이 다른 투톤 컬러 타입으로 차체는 레드, 블루, 오렌지, 블랙, 카본 그레이, 아이보리의 총 6가지, 루프는 블랙, 오렌지, 아이보리의 3종 컬러가 주종이다. 차량 내부에서도 시트, 센터페시아 등에서 컬러 선택권이 주어진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럭셔리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 전략이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커스터마이징 마케팅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BMW 미니의 경우 외부 색상은 물론 외부미러캡, 측면방향 지시기 테두리, 휠 밸브 캡, 유니언 잭이나 체커드 플래그 디자인의 도어핸들 같은 액세서리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국내 소비자들은 차량 외부 디자인만 300개, 내부 인테리어까지 합하면 370개 이상 각기 다른 조합의 미니를 고를 수 있다. 주문제한이 없는 현지에서는 1만 가지 이상 조합이 가능하다.
1986년 완성차 브랜드 최초로 차량 맞춤 전문 부서인 ‘스페셜 위시 프로그램(Special Wishes Program)’을 만든 포르쉐는 포르쉐 익스클루시브(Porshe Exclusive)로 개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휠 디자인과 색상은 물론 인테리어 소재·컬러, 심지어 가죽을 박음질한 스티치 색상까지도 고객이 원하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인테리어 패키지는 인테리어의 부분들을 외장 컬러와 맞춰 동일하게 도색하거나, 차량 키까지 같은 색으로 맞춤 주문이 가능하며, 도어 엔트리 가드에는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도 있다. 심지어 연료 뚜껑을 포르쉐 로고가 각인된 알루미늄으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포르쉐는 선택의 재미를 강조하는 데도 심혈을 쏟고 있다. 매장에 익스클루시브 전용 피팅라운지를 설치해 커스터마이징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온라인 홈페이지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 코너에서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고객이 만들어낸 차량을 보여주는 식이다. 포르쉐 측은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포르쉐’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울트라 럭셔리 브랜드는 커스터마이징을 정체성으로 삼는다. 롤스로이스의 경우 맞춤 제작 시스템인 비스포크(Bespoke)를 통해 수제품 같은 유일무이한 차량이 생산된다. 앉은키를 고려해 시트를 만들어달라는 주문부터 내장재를 모두 금으로 채워달라는 주문까지 모두 현실로 만들어내 커스터마이징에 한계를 없앴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