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에 읽을만한 그림책
겨울밤은 어둡고 발끝까지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번쯤은 누구나 행복해지는 꿈을 꾼다. 그림책은 크리스마스에 참 잘 어울리는 선물이다. 읽고 있으면 내일 아침 나에게도 기적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른도, 아이들도 읽으면 온 마음이 따뜻하고 환해지는 선물 같은 크리스마스 그림책들을 골랐다. 메리 크리스마스.

모든 사람들이 트리 갖게 된 사연…
텅 빈 방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싶다면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는데’(로버트 배리 글·그림/길벗어린이)가 좋겠다. 1963년에 처음 출간되어 50년 이상 사랑받아온 흑백 그림책의 고전으로 2000년에 색을 입혀 다시 펴냈다. 완벽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하는 데 성공한 윌로비 씨는 거실 한복판에 그 나무를 세운다. 그런데 천장이 낮아 꼭대기 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층에서 일하는 애들레이드 양에게 건너가지만 그 집 천장도 낮아서 또 조금 잘라야 했다. 한 그루 나무는 점점 작아지면서 돌고 돌아 숲 속의 곰과 윌로비씨네 생쥐까지도 자기만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게 된다. 나눌수록 행복하다는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유쾌하게 나타냈다.

크리스마스 연극 무대에 오른 소녀
크리스마스는 많은 어린이가 무대에 오르는 날이기도 하다. ‘마법처럼 문이 열리고’(케이트 디카밀로 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책속물고기)는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처음으로 천사 역할을 맡은 소녀 프란시스의 이야기다. 프란시스는 거리의 악사 할아버지를 만나 원숭이에게 동전을 주면서 꼭 공연을 보러와 달라고 부탁한다. 막이 오르고 자신의 차례가 되었지만 추위에 떨고 있을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한 마디도 입을 떼지 못하던 프란시스는 그들이 공연장에 들어서는 걸 보면서 비로소 “내가 너희에게 커다란 기쁨의 소식을 가져 왔노라”라는 대사를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작은 아픔에도 마음이 쓰여서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구석구석까지 닿아 서러운 곳이 없도록 환하게 비추는 날이 크리스마스다.

다친 늑대 간호하는 아기 돼지들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아저씨’(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시공주니어)가 어떨까. 아기 돼지들의 영원한 적, 늑대가 돼지를 잡아먹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찾아왔다가 몸을 다치게 되는데 오히려 정성 가득한 간호를 받고 다친 몸을 회복하는 얘기다. 늑대는 입을 다쳐 말을 못 하고 아기 돼지들은 늑대의 포효조차도 고맙다는 인사로 해석한다. 일 년 내내 불편한 마음을 풀지 못했던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슬쩍 그 마음을 풀고 잘 지내자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힘든 아이들에게 찾아 온 요정의 왕
선물의 첫 번째 조건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루스 소여 글, 바바라 쿠니 그림 /시공주니어)가 만족스러운 선물이 될 듯싶다. 크리스마스는 번쩍임이 지나칠 정도로 세상을 점유하는 날이어서 정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선물이 오히려 돋보일 수 있다. 바바라 쿠니의 그림은 미감이 아무리 까다로운 독자라도 여간해서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일 나간 아빠를 기다리면서 춥고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아이들에게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수상쩍은 행동으로 아이들을 바짝 긴장시키던 이 남자는 알고 보니 힘든 아이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하러 온 요정의 왕이었다는 얘기다. 행운은 진실하고 착한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는 줄거리가 보통 때 같으면 우습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좀 다르다. 힘을 내어 새해를 맞이하려면 우리에게는 의지처가 필요하다.

깨지지않는 축구공 등 상상초월 선물
뭐니 뭐니 해도 크리스마스에는 놀랄 만한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믿기 어려운 크리스마스 선물 44가지’(나탈리 슈·만다나 사다트·레미 사이아르 글·그림/바람의아이들·일러스트)를 권한다. 이 그림책은 꿈 같은 선물이 가득한 목록집인데 책장을 넘기면 ‘매일 아침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해적선’이나 ‘부딪혀도 아무것도 깨지지 않는 실내용 축구공’처럼 어린이가 기쁨의 비명을 지를 만한 선물이 줄을 잇는다. ‘자기가 원하는 나이가 되게 해주는 물약’도 있어 어른도 솔깃하겠지만 아쉽게도 유효기간은 1일이다. 재치 있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상상 초월의 선물 목록을 읽다보면 받은 것이 없는 데도 어쩐지 든든한 기분이 든다. 그림책 한 권이 어디까지 즐거움을 담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에 그림책만큼 믿음직한 선물도 없다. 사랑스러운 그림책과 함께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김지은 어린이·청소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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