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3일 ‘대일 항쟁기 미수금 피해자 지원금’ 행정소송과 관련한 위헌법률 심판 사건에 부가된 한일청구권협정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됐지만 노무 제공 대가를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를 위한 ‘강제징용보상법’에 대해서는 재판관 6 대 3의 찬·반으로 합헌 결정했다. 이와 함께 청구인들이 ‘한일협정으로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헌소는 해당 행정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재판의 전제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본안을 심판하진 않았다.

1965년 12월 18일 발효한 한일협정은 제1조에서 일본의 대한(對韓) 무상 및 차관 제공 5억 달러를 명시한 데 이어 제2조 1항에서 ‘양 체약국은 (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제2조를 근거로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일관된 주장을 해왔으며, 이는 한국 정부와 피해자들의 비판과 원성을 초래하고 있다. 이번 헌소도 강제동원 피해자 이화섭 씨의 딸 윤재 씨가 2009년 11월 청구한 이래 6년1개월 만에, 그나마도 본안을 심리하지 않는다는 결정에 그치고 만 배경에는 반(反)인륜적 식민지배의 죄책에 대한 양국 국민의 해묵은 감정선이 교차해 있다.

그러나 국가 간의 관계와 직결된 사법 판단은 국내 당사자 간의 쟁송(諍訟) 심판과는 다를 수 있다. 단순한 사법 정의를 뛰어넘는 외교적·정치적·역사적·현실적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일방의 국내 사법절차만으로 재단할 경우 국회 비준까지 거친 조약에 대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헌재(憲裁)가 사법 자제(司法自制)의 법리를 좇은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대내적으로 헌재가 2011년 8월 위안부·원폭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된 정부 부작위에 위헌 결정한 전례에 비춰서도 대외적으로는 사법 자제가 현실적 대안이다. 한일협정의 쟁점은 여전히 미제(未濟) 현안이다. 각하 결정이 식민지배 면책일 수 없고 헌재도 재판 전제성이 갖춰지면 심판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만큼,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 또한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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