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패딩 차림의 할머니
두 차례 걸쳐 거액봉투 선뜻
“초라했지만 표정만은 따뜻
짧은 눈인사 뒤 급히 자리 떠”
신원을 알리지 않은 채 낡은 패딩 점퍼를 입고 900만 원을 구세군 냄비에 넣고 사라진 할머니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연말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28일 한국구세군에 따르면,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한 대형백화점 건너편에 있는 구세군 냄비 근처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서성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는 천으로 된 낡은 가방 안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꼬깃꼬깃 구겨진 봉투를 가방 깊숙이에서 꺼낸 할머니는 조심스레 다가와 구세군 냄비 안에 넣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는 낡은 패딩 점퍼를 입은 할머니는 다른 기부자들과 달리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부끄러워했다. 할머니는 “고맙습니다”라는 직원의 말에 짧게 “네”라고 대답한 뒤 눈인사를 하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언뜻 보아도 두툼해 보이는 이 봉투에는 5만 원짜리 지폐 80장, 400만 원의 거금이 들어 있었다.
이날 모금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들은 할머니가 이날 두 번 기부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할머니는 처음 돈을 넣은 곳에서 300m가량 떨어진 또 다른 구세군 냄비에 봉투를 한 차례 더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할머니의 두 번째 봉투에는 100만 원짜리 수표 5장이 담겨 있었다.
구세군 관계자는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좋은 일을 하시면서도 매우 수줍어하셨다”면서 “900만 원에 이르는 거액을 두고 가시면서도 다른 어떤 말이나 메시지도 남기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록 할머니의 옷차림은 조금 남루했지만, 그 표정은 누구보다 따뜻했다”면서 “할머니의 고마운 마음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꼭 전달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구세군은 할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자기앞수표 정보는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 목적 등이 아니면 공개가 안 돼 할머니는 결국 영원히 ‘얼굴 없는 천사’로 남게 될 전망이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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