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7년에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위즈덤하우스)가 현재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11월에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절판됐던 ‘김영삼 회고록-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전 3권·백산서당)이 1000질 한정으로 출간돼 매진되면서 대통령의 자서전이 또다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앞서 2월에는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알에이치코리아)이 출간돼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의 자서전은 시판도 되기 전에 언론 매체에서 앞다퉈 기사를 쏟아내는 뉴스거리지만 정작 책으로서의 대중적 인기는 낮은 편이다. 대통령 자서전에 천문학적 선인세가 지불되며 최고의 ‘빅 타이틀’ 대접을 받는 미국 등과는 다르다. 왜 그럴까. 한기호 출판마케팅 연구소장은 “주관적인 시각이 담긴 만큼 한계가 있다 해도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회고록은 당대 정치의 기록이며 진행되는 현재 역사의 기록이다. 치열한 삶과 정치의 데이터베이스가 돼야 한다”며 “역대 대통령의 자서전에 대한 상대적으로 낮은 관심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부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대통령의 자서전=한국 역대 대통령 중 재임 후 회고록을 남긴 이는 윤보선·노태우·김영삼·김대중(DJ)·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6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취임 전인 2007년에 펴낸 자서전이다. 이승만·최규하·박정희 전 대통령은 회고록은 남기지 않았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현재 회고록을 직접 집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YS는 퇴임 2년도 안 돼 책을 냈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각각 퇴임 후 18년과 29년 만에 나왔다. DJ 회고록은 그의 뜻에 따라 사후에 출간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미완인 상태로 역시 사후에 출간됐다.
YS는 퇴임 1년 11개월 만인 2000년 1월 총 3권 1098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을 냈다. YS는 자서전에서 “현대 정치사를 이제 내 손으로 쓴다는 심정으로 쓴다. 이 기록이 한국 현대 정치사의 생생한 현장을 증언하고, 아직은 불안한 이 나라의 민주화에 튼튼한 받침대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퇴임을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진데다 회고록이 주로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출판사는 초판을 30만 질가량 준비했으나 이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상당히 곤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혼이 찾아왔고 사위는 고요하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김대중 자서전’(삼인)은 집필진이 DJ와의 41차례 구술 인터뷰를 통해 초고를 집필하고 DJ가 직접 검토·수정한 책이다. 그의 뜻에 따라 1주기를 앞둔 2010년 8월에 출간됐다. 당시 출간 1주일 만에 초판 2만 질이 매진되기도 했다. 1권은 출생에서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았고, 2권은 취임 직후부터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 담겨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미완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은 그가 생전에 남긴 메모와 대화를 모아 지인과 참모들이 마무리해 2009년 9월에 출간됐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실패라는 키워드를 회고록의 전체 기조로 잡고 참여정부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 노무현 정치가 좌절한 배경 등을 설명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은 개인사나 정치 인생 중심이 아니라 정책 위주의 회고록이다. 한·중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당시 상대국 정상의 비공개 발언을 쓰는가 하면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남북이 비밀 접촉을 했다는 내용도 있다. 책에도 밝혔듯이 “기억이 용탈돼 희미해지기 전에 대통령과 참모들이 생각하고 일한 기록을 가급적 생생하게 남기고 싶었다”는 것이 회고록 집필의 이유였다. MB는 회고록 출간을 위해 1년 이상 매주 집권 당시의 대통령실장, 대통령 수석비서관 등 참모들과 회고록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박근혜 대통령의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나라 운영에 대한 감각을 익힌 10대 시절을 시작으로, 어머니를 총탄에 잃고 슬픔을 감춘 채 퍼스트레이디가 된 20대, 아버지를 잃은 후 사회사업을 하며 보낸 30대,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 40대, 그리고 대선 후보가 된 당시 이야기까지 풀어내고 있다.
◇역대 대통령 자서전의 논란과 인기=역대 대통령 자서전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서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으로 출판사가 밝히는 누적 판매 부수는 16만 부. 올해도 5000부가량이 팔리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서전도 2007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10만 부가량이다. 2007년 출간 당시 3만 부가량이 판매됐고, 대통령 당선 이후 2배가량 더 팔렸다. 최근에도 매년 3000부 안팎이 팔려나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8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DJ 자서전도 꾸준한 인기다. 출판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대략 8만 부가량이 나갔다. YS 자서전은 2006년 무렵 절판됐다가 11월 YS 서거를 계기로 한정본으로 1000질이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서전들은 같은 정도의 화제성을 지닌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판매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또 판매량 중 일정 부분은 정치권에서 소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해 한 주요 출판사 편집이사는 “정치인 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자서전은 출판사로서는 부담스러운 책이다. 출간 과정도 까다롭고 회고록 안에 담긴 내용에 따라 정치적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출판사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통령의 자서전은 출간 이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1년에 나온 ‘노태우 회고록’(전 2권·조선뉴스프레스)은 정치자금 문제를 다뤄 후폭풍이 일었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 측에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MB 자서전도 북측이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100억 달러 등을 요구했다고 주장해 ‘외교문서’ 공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