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창밖으로 다가오는 테주 강변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 느낌도 잠시뿐 바퀴가 덜컹하고 활주로를 치며 리스본 공항에 닿았다.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설레었다. 15세기에 시작해 16세기 세계사의 중심에 혜성같이 나타났다 역사의 뒤안길로 멀어져간 포르투갈, 그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맞이하는 첫 주말 아침 일찍 산책에 나섰다. 대항해시대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벨렝으로 향했다. 조용한 아침 광장을 압도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장대함과 섬세함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모습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향신료 무역에서 얻은 수입으로 막대한 건축 비용을 충당했다. 그 옛날 멀고도 험난한 바닷길로 출항하기에 앞서 선원들은 이 수도원에서 기도를 드리며 마지막 안식의 밤을 보냈다고 한다. 자리를 옮겨 길 건너편으로 가보니 발견기념탑이 서 있었다. 항해왕이라 불리는 엔리케 왕자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대형 탑이다. 배 모양을 한 석조 탑은 대항해시대를 이끈 영웅들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다다랐고, 바스코 다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다. 카브랄은 인도로 가던 길에 신대륙 브라질을 경유했다.
지금부터 5세기 전 포르투갈이 건설한 해상제국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유럽 대륙의 변방 남서쪽 땅끝에 있는 인구 100만의 작은 나라가 대항해시대를 선도해 나갔다. 그들은 유럽 대륙을 뒤로하고 대서양을 향한 모험의 길을 택했다. 아프리카 해안 전역을 돌아 중동, 인도, 동남아, 중국, 일본까지 연결하는 항로를 개척하고 곳곳에 기지와 거점을 세웠다. 바닷길을 장악하고 무역을 독차지하며 해상 네트워크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역사상 어느 한쪽의 대외 진출은 다른 쪽의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객관과 신중을 요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지의 바다에 운명을 내걸고 바닷길을 통해 세상을 연결했다는 관점에서 볼 때 포르투갈의 대항해는 큰 성공이고 세상에 대한 기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왜 대항해를 시작했고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한마디로 혁신이었다. 생각의 혁신, 기술의 혁신, 시스템의 혁신이었다. 대서양 먼바다에 도전하여 바닷길을 통한 아시아 무역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고의 전환이고 혁신이었다. 생각의 혁신은 과학기술의 혁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카라벨이라는, 작으면서도 기동력 있는 배를 만들었고 바람과 해류를 이용한 항해술을 발전시켰다. 해도, 나침반, 천체관측기 등 첨단 항해 도구도 개발했다. 혁신을 견인하고 활용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도 작동했다. 분권화된 중세 유럽에서 일찌감치 독립적 국가 체제를 갖추고 왕권을 중심으로 해양 진출에 역량을 집중했다. 대항해시대 초기에 큰 역할을 한 엔리케 왕자의 항해학교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다양한 부문의 인적 물적 자원을 융합한 혁신 시스템이었던 듯하다.
포르투갈은 아시아 해상제국의 명맥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17세기에 중요한 기지와 거점을 하나씩 잃어버린다.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후발 주자인 네덜란드, 영국 등에 도처에서 밀린 결과다. 그 후 포르투갈의 역사는 좌절과 굴곡을 경험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대항해시대 선조들의 도전과 혁신에 관해 얘기하면 그들의 얼굴은 밝아지고 눈이 반짝거린다. 영광의 역사에 무한한 자부심과 향수를 갖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포르투갈은 새롭게 나아가고 있다. 재정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도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희망하는 브라가 창업지원센터 소장, 한국의 대학과 줄기세포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미뉴대 교수, 진취적 상인 정신으로 충만한 포르투 기업인, 일자리를 찾아 세계 어디로든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있다. 인류 역사상 도전과 혁신을 실천한 사회는 흥했고, 그렇지 않은 사회는 기울었다는 리스본대 노교수의 말에는 역사의 경험이 배어 있는 듯했다.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며 포르투갈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그들의 성공과 중흥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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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58) △서울대 법학과 △제15회 외무고시 △재외동포심의관 △정책기획국장 △주남아공 대사 △현 주포르투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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