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헌민, 마이크로소프트 개발 이사
- 정선민, 보잉 선임 엔지니어
- 대니얼 신, 인슬리베스트 법률회사 변호사
- 구현서, 아마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 사회 = 신보영 특파원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서 꿈을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미국인들도 쉽지 않은 글로벌 기업의 문을 어떻게 뚫었을까. 언어의 장벽을 어떻게 넘었을까. 오창호(54) 스타벅스 개발 부문 수석 엔지니어와 임헌민(50) 마이크로소프트 개발 이사, 대니얼 신(41) 인슬리베스트 법률회사 변호사, 구현서(37) 아마존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 정선민(30) 보잉 선임 엔지니어 등 5명은 “영어 구사 능력이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은 아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영어 울렁증’이 문제지, 영어 구사 능력이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오히려 한국인 특유의 ‘질문하지 않는 문화’에 길든 소극적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 중 3명은 ‘토종’ 한국인이지만, 취업·승진에 아무런 불이익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민 1.5세대인 신 변호사와 정 엔지니어를 제외한 3명은 직장에 다니면서 언어·문화적 차이를 절감했을 것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살아남는 생존 비결도 좌담을 통해 함께 들어봤다. 좌담회는 지난해 12월 11일 시애틀 총영사관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직접 참석이 어려웠던 보잉의 정 엔지니어는 이메일을 통해 좌담에 참여했다.
― 글로벌 기업의 급여 수준에 만족하나.
△오창호 =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한국에 비해 훨씬 우대받는 직종이다. 한국은 호봉으로 따지니까 과장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일반 사무직 과장이나 월급이 같다. 반면 미국에서는 일반 사무직이 6만 달러를 받는다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10만 달러를 받는다. 시장 가치 등에 따라 보상 기준이 다르다.
△임헌민 = 급여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한국은 한국 생활비 수준에 맞게, 미국은 미국에 맞게 급여가 책정돼 있다고 본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에서 그런 갈증은 없다.
△대니얼 신 = 친구들 중에 미국 변호사 자격으로 한국에 간 친구들이 많은데, 한국에서 급여가 더 적다고 하더라.
― 3명은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까지 한국에서 나왔는데, 어떻게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게 됐나.
△임헌민 = 시골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여기 나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삼성전자에서 7년 근무하다가 회사 지원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러 나왔다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이곳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
△구현서 = 5년 전에 석사학위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처음 왔다. 공부를 그만두게 되면서 이왕 미국에 온 김에 미국 기업에서 일해보자는 생각에 지원하게 됐다.
△오창호 = 미국에 온 지 32년째인데, 집안 사정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하던 박사과정을 중도에 그만뒀다. 경험부터 쌓자는 차원에서 일단 작은 창업회사에 취업했다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스타벅스까지 오게 됐다.
△정선민 = 어릴 때 볼리비아로 이민 갔는데, 어릴 적부터 꿈이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준비했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회사를 확신시켰다.
―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영어 문제는 없었나.
△오창호 = 한국인들은 미국에 오면 영어에 매우 민감해 하는데, 사실 생활하다 보면 큰 문제가 없다.
△임헌민 = 영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여기 오는 젊은 사람들은 영어가 나보다 100% 이상 나을 것이다.
△구현서 = 30대라면 영어가 가끔 문제가 될 수 있다. 스펙으로 쌓은 영어와 실제 생활에서 쓰는 영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어가 결정적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직접 와서 부딪쳐 보기 전에는 아무도 자기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와서 해봐야 안다.
△대니얼 신 = 한국 변호사들이 미국에 취업해서 왔는데, 적응을 잘 못하더라. 아무래도 법률회사는 언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직종에서는 영어가 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려는 한국인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니얼 신 = 한국인들 면접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 전혀 적극적이지 않더라. 미국에서는 면접관과 면접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주도권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수평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창호 = 실제로 한국인들을 직접 인터뷰해봤다. 모든 질문에 상당히 주저하고, 자신감이 결여돼 있더라.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한국의 위계질서에 적응해서인지 면접관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미국인들은 질의응답을 통해 답을 명료하게 만들어가는데, 한국인들은 이런 과정 자체에 두려움을 갖는 것 같다.
△구현서 = 나도 면접관으로 한국인 구직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면접 중에 상당히 미안해하더라. 미국에서는 절대 쉽게 미안해하면 안 되는데, 한국인 구직자들 대다수가 그랬다. 한국에서는 면접관이 여럿이어서 면접자가 수동적인 구조지만, 미국은 기껏해야 1대 1이나 2대 1이다. 면접자가 논의를 주도해야 성공한다.
△임헌민 = 한국인 구직자들은 면접을 시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처럼 서류 시험 통과하면 면접을 본다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뭔가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인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면접관들이 정답이 없는 질문을 막 던진다. 정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면접자가 생각을 어떻게 전개하느냐를 본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니까, 주저하지 말고 중간에라도 면접관에게 묻고 답하는 상호 작용을 해야 한다.
― ‘영어 울렁증’ 때문에 소극적인 것이 아닐까.
△임헌민 = 영어를 잘해도 똑같더라. 영어라는 말만 열심히 배웠을 뿐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어를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오창호 = 말을 잘하는 것과 소통을 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미국 기업의 구직란에 반드시 요구하는 능력이 하나 있는데, 바로 ‘좋은 소통능력(good communicator)’이다. 기술직인 엔지니어를 뽑아도 이 능력은 꼭 들어간다.
― 한국과 미국의 직장 문화가 많이 다른가.
△구현서 = 한국의 작은 회사들에서 7년 정도 근무했었는데, 가장 큰 차이는 회식이 있느냐 없느냐다. 미국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안 봐도 된다.
△임헌민 = 한국은 인맥으로 다 연결되고, 팀 구성원들이 모두 가족이다. 하지만 미국은 주로 일로만 평가를 한다.
△오창호 = 상사가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리다. 나이와 전혀 상관없이 개인의 성취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미국 기업 문화다. 그만큼 자기 책임도 크다. 전에 일하던 회사가 다른 회사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는데, 어쩌다가 동료들의 연봉을 봤는데 내가 제일 적었다. ‘네 나팔은 네가 스스로 불어라(tooth your own horn)’라는 미국 속담이 있는데,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상사에게 상응한 보상을 요구해야만 제대로 보상받는 문화도 한국과 많이 다르다.
△대니얼 신 = 두 살 때 이민 오기는 했지만 한국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한국 문화에 익숙한데, 미국에서 변호사 업무는 상당히 공격적이어서 초반에 좀 적응이 어려웠다. 한국 문화는 팀워크 중심이고, 미국 문화는 개인주의가 기반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변호사는 미국인 변호사보다 아무래도 더 조용한 편이다.
― 외국인으로서 받는 차별은 없나.
△정선민 = 보잉은 직원이 16만 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다. 올해 100주년으로, 자부심이 상당하다. 게다가 전 세계 국가들이 모두 고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다양성을 존중한다. 다만, 안보적으로 매우 민감할 수 있는 일부 제품 생산 공정에는 미국 시민권자만이 참여하게 하는 제약이 있기는 하다.
△대니얼 신 = 아무래도 상위에는 백인들이 절대다수로 많다. 시애틀의 한인 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했었는데, 2009년 금융위기 때 상당수 회원이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도 취업하지 못했다. 나도 2013년까지 혼자 개업해서 일해야만 했다.
△임헌민 = 지금은 거의 그런 차별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국에 운영체계(OS)를 판매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상당히 수용하고 있다. 게다가 매년 각종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비디오 교육 등을 2∼3시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구현서 = 아마존에도 인종 구성 면에서 아시아인들이 대개 많다. 물론 부회장 이상 직급은 여기도 백인이 대다수다. 다만 아마존은 직원에 대한 혜택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출산 휴가도 없었는데, 최근에야 새로 생겼다.
― 한국의 경제적 성장이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는 데 도움이 되나.
△임헌민 = 한국 경제가 상당히 컸다. 한국이 클수록 미국에서 한국인들에게 기회가 많아지고,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구현서 = 글로벌 기업에 한국인들이 꽤 있는데, 한국 경제가 커지면서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 같다. 한국 기업들이 건강해지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대니얼 신 = 변호사 업무 특성상 한국계인 내가 회사에서 가장 국제거래를 많이 한다. 중국인들이 최근 시애틀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같은 아시아인이다 보니 여기에서도 득을 보고 있다.
△정선민 =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앞으로 한국 항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서 항공우주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한국의 어떤 분들에게 글로벌 기업 취업을 추천하겠는가.
△오창호 = 한국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은 실력이 매우 좋다. 그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만 떨치면 된다.
△임헌민 = 글로벌 기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번 꼭 취업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국가에 기회를 많이 준다. 여기서 일하다가 다시 한국 회사로 옮겨가도 많은 도움이 될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구현서 =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경험 차원에서라도 한 번씩 지원해보기를 권한다. 경험 자체만으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시애틀 = 글·사진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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