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 경제산업부장

조선 세종 8년인 1426년 1월 16일, 민심을 전하는 사간원(司諫院)의 좌사간 허성이 상소(上疏)를 올렸다. “국방도 중대한 일이지만,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어진 정치에서 더욱 선행돼야 할 것이니 올해 봄의 강무(講武)를 중지해 백성들을 구제해 달라”고 했다. 강무는 임금이 직접 참여해 실시하는 사냥대회이자 군사 훈련이었다. 소요되는 예산과 동원 인력이 상당했다.

당시 경제사정이 심각했다. “경기 지역에는 몇 년 전부터 가뭄이 극심해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농사에 실패한 농민들을 구제하고 있고, 강원도에선 농사에 실패해 떠돌아다니는 백성이 많았다.” 그래서, “노동과 노역에 동원할 때가 아니다”는 게 허성이 올린 상소의 요지였다. 그는 “강무가 1년에 두 차례 있으니 흉년일 경우에 한 차례를 정지한다고 해서 군사적 준비에 무슨 차질이 있겠느냐. 백성을 구제해야 할 시기에 그들을 괴롭히는 일을 꼭 실시해야 하겠느냐”고 따졌다. 세종은 애초 허성의 1차 상소를 받은 터였다. 그때는 세종도 경제 상황이 어떤지를 알고 있었던 만큼 “실시기간을 짧게 하라”면서 강무의 목적지였던 강원 횡성으로 행차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병조에서 “국방을 위해 강무를 중지하면 안 된다”는 글을 올리자 세종의 마음이 흔들렸다. 북방의 여진족을 제압하는 것도 국사의 중대사였다. 세종은 결국 “강무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이므로 폐지할 수 없다”고 비답(批答)과 전교(傳敎)를 내렸다. 세종은 “강무의 폐해를 모르는 것이 아니나 풍년이 들었다고 한들 어찌 폐해가 없겠느냐”면서 “더구나 선왕 때부터 만들어 놓은 법이므로 더욱 폐지할 수 없다”고 했다. 세종은 눈앞의 민생과 국방 현안 가운데 국방을 우선시했다. 이 시기 세종은 10여 일을 앉은 채로 밤을 지새울 정도로 민생을 놓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윤재환 단국대 국문과 교수가 ‘상소와 비답’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정책결정권자가 맞닥뜨린 국정 현안 가운데 일도양단(一刀兩斷)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올해 경제를 살펴봐도 그렇다. 국제 경제는 지난 연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이미 두 갈래로 갈라졌다. 달러 유출이 걱정되는 쪽은 금리를 따라 올리고, 수출과 경기부양이 급선무인 곳은 돈 풀기를 하고 있다. 국내 경제를 봐도 내수를 위해선 부동산경기가 호황이면 좋겠지만, 가계부채가 걱정이다. 내수도 살리고 수출도 늘리는 경기부양의 묘책, 가계부담을 줄이면서 달러 유출을 막을 통화정책의 상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현답(賢答)은 쉽지 않다. 아니, 없다고 해야 옳다. 인류 역사상 거저 얻어진 자유도 없지만, 공짜 점심도 없었다. 어떤 편익과 후생을 선택하건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정책의 우선순위를 살펴야 한다. 정치의 타협과 경제의 기회비용이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 어느 해보다 불확실성이 큰 한 해다. 상충되는 요인이 많은 경제상황 속에 정책마저 갈피를 잃거나 충돌한다면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게 새 경제팀이 경계해야 할 제1요소다.

oshun@munhwa.com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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