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은 글감을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르는 일은 그 자체가 이미 쓰는 일이다. 텍스트나 글감을 자기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것까지 포함하면 평론 쓰기의 사실상 전부라 해도 좋겠다.
올해도 예년과 같이 대다수의 응모작이 기본을 갖춘 글이었으나 네댓 작품을 추려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선정한 텍스트와 맥락화의 논리들이 이미 글의 수준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한 작품을 추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조대한 씨의 ‘조용한 윤리적 발화들 - 시적 주체와 타자가 만나는 시간’과 차선일 씨의 ‘실종자의 미궁-편혜영론’을 두고 마지막까지 갈등했다.
조대한 씨는 미학과 정치가 곧바로 이어지는 논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그 중간항으로서 최근의 시편들에서 확인되는 조용한 윤리적 발화들을 설정하고자 했다.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뛰어난 시편들을 통해 개진되어 큰 설득력을 지닌 글이었다. 문제설정의 적절함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편혜영의 소설 세계가 지니는 의미를 말하기 위해 실종자와 미궁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차선일 씨의 경우도 이에 못지않았다.
편혜영의 세계 속에서 실종자란 “없느니만 못한 존재들의 은유”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상당한 이론적 내공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차선일 씨가 구사하는 이론과 수사는 장식적이거나 과시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이 정교했다. 이 점은 조대한 씨의 글이 갖지 못한 미덕이었다. 그러니까 덜 정교한 문장들이 조대한 씨의 글을 마지막 씨름판에서 밀어낸 셈이다.
차선일 씨의 글은, 자상할 것까지는 없지만 좀 더 친절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상대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싶다. 이제 기회를 얻었으니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란다.
심사위원 서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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