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쟁점 안건에 대한 입법(立法)이 사실상 마비된 ‘국회 비상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더 악화해 입법부 기능의 중요한 부분이 전반적으로 붕괴될 경우 가위 ‘국가 비상사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전국 246개 국회의원선거구가 법적으로 무효가 돼 대한민국이 ‘선거구 없는 나라’가 됐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그런 선거구에 기초해 선출된 국회의원의 법률적 지위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야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1일 현행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 유지를 축으로 한 획정 기준안을 제안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의 2일 회의는 여전히 공회전(空回轉)에 그쳤다. 정 의장이 앞서 1일 “2014년 10월 3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선거구가 0시부터 효력을 상실했다”고 새삼 지적하며 “제20대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초유의 상황”이라고 개탄했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이런 정 의장의 직권상정 복안도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 설사 정 의장 제시안 그대로 획정위가 의결하더라도 여야가 합의한 ‘253개 지역구’와 크게 다르다. 어렵사리 본회의 표결에 부치더라도 부결이 뻔해 처음부터 여야의 보다 진지한 협상을 추동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런 엄중한 국면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불가피하게 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에 비춰서나, 현행 국회법 규정에 비춰서나 최대한 회피해야 할 비상 조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입법부 마비에 대비한 ‘최후의 비상구’ 성격도 있다. 정 의장은 국회의장으로서 할 만큼 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 효과’를 거두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수결 원칙에 입각한 결단이 정도(正道)다. 모든 중재 노력이 실패한다면 일부 비판을 무릅쓰더라도 ‘다수당 안(案)’을 차악(次惡)의 대안으로 상정하는 게 옳다. 그러면 여야 협상력을 복원할 수 있고, 국회선진화법을 보완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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