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 논설위원

청와대와 안기부(현 국정원) 등 한국 권력 중심에 침투하라는 김정일 지시가 담긴 북한 스파이 교재가 최근 공개됐다. 진보 성향의 일본 도쿄(東京)신문이 ‘김정일주의 대외정보학’이란 비밀교재 내용을 지난 1일 보도했다. 이 교재는 1997∼1998년 사이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발간됐다. 이 대학은 금성정치군사대학의 후신으로 대남간첩 및 전투원 양성기관이다.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위치한 4년제 교육기관으로 ‘130 연락소’로도 불린다. 사상교육과 남한정세 교육, 그리고 사격·잠수 등 전투훈련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재는 “적은 자신들의 중요 기관에 우리 정보 조직이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사찰기구를 동원해 수사할 것”이라며, 침투공작에 종사하는 공작원에게는 “그 이외의 임무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세계 스파이사(史)의 전설 중 하나가 ‘케임브리지 5인방’이다. 1930년대 영국 명문가 출신 청년 5명이 케임브리지대에 재학하던 중 공산주의에 심취, 소련 정보기관에 포섭됐다. 이들은 소련 공작원의 권유로, 표면적 좌익활동을 중단하고 정보기관인 MI6와 외무부 등에 들어갔다. 특히 킴 필비는 MI6의 미국 연락관으로, 미국중앙정보국(CIA) 정보까지 소련 측에 넘겼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 소련 간첩도 즐비했다. 유엔 창립 실무책임자였던 엘저 히스와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주무자였던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대표적이다. 당시 매카시즘 피해자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소련 붕괴 이후 비밀문서 공개로 이들이 간첩이었음이 확인됐다.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권이 주사파에게 장악당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강철서신’ 저자로 당시 주사파 대부였던 김영환 씨는 “북한과 직접적인 연계선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것은 주사파 운동권에서 상하 지위와 명령 복종 관계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 요건”이라고 증언한다. 김 씨는 1991년 5월 북한 잠수정을 타고 입북해 김일성을 직접 면담한 뒤, 무인포스트를 통해 공작금과 무기를 전달받았다.

북한의 한국 핵심부 침투공작이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침투 시도는 많았을 것이다. 1980년대 말 주사파는 ‘투신조’란 팀을 만들어 노동현장 이외의 다른 분야에 다양하게 들어갔다. 따라서 한국판 필비나 히스가 있을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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