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 체육부장

지난해 12월 16일 문화일보의 특종보도로 의미 있는 변화가 이뤄졌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선수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정규 투어대회가 아닌 이벤트대회에서 상금 일부를 협회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징수해 선수들이 집단반발한 것을 문화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파문이 일자 KLPGA는 닷새 후 긴급 이사회를 열고 상금에서 원천 공제해오던 기금 징수 요율을 6.7%에서 6%로 낮추고, 정규대회 이외의 비공식대회에선 기금을 징수하지 않기로 규정을 손질했다. 1989년 KLPGA 출범 이후 관련 규정이 바뀐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KLPGA는 기금 관련 규정 개정을 2부와 3부인 드림투어와 점프투어, 그리고 시니어투어에도 똑같이 적용키로 했다.

하지만 KLPGA는 가장 중요한 적립 기금의 구체적인 활용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향후 선수, 은퇴자 지원 등에 기금을 사용한다는 방침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200억 원에 이르는 KLPGA의 누적 기금은 그대로 은행에 예치돼 있다.

국내 다른 프로 스포츠 단체도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주로 선수들이 낸 벌금을 선수, 은퇴자들의 복지 지원을 위해 모으고 있으며 프로축구연맹은 18억 원, 한국농구연맹(KBL)은 13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KLPGA와 마찬가지로 조성된 기금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지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KBL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현역 선수 연금보험으로 1인당 연간 60만 원 한도에서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은퇴 선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KBO는 신생팀 가입금, 포스트시즌 수익금 일부, 선수의 벌금 등으로 모은 200억 원의 베이스볼 투모로우 펀드를 운용하고 있지만 은퇴자 지원에는 인색하다.

프로야구 NC와 계약한 박석민은 올해부터 4년간 최대 96억 원, 1년간 24억 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고액 연봉자는 소수다. 프로야구 최저연봉은 2700만 원이며 지난해 등록 선수의 절반 이상이 5000만 원 미만이었다. 한 해 수억 원을 받는 고액 연봉자라면 은퇴 이후를 스스로 보장하겠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게다가 저액 연봉자일수록 선수생명은 짧다. 대개 30대 중반이면 은퇴하지만, 20대에 유니폼을 벗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선수 시절엔 많든 적든 연봉을 받기에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가겠지만 은퇴하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코치, 감독 등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다. 어릴 적부터 운동에 전념해왔기에 은퇴한 뒤 다른 직종에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고 대부분은 실업자가 된다.

대한체육회는 2013년부터 은퇴선수취업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직업교육 및 취업알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프로 스포츠 단체는 약속이나 한 듯 은퇴자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 그동안엔 ‘형편’이 어려워 돕지 못했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은 ‘곳간’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다. 이젠 은퇴 선수의 사회 적응, 재취업 지원을 위해 곳간의 문을 열 때다. 지금까지 누적된 기금으로 은퇴 선수 지원 시스템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

jhlee@munhwa.com
이준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