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스승 - 가수 윤형주

‘내가 하늘을 그리면 어느새 아이들은 새가 된다. 내가 산을 그리면 어느새 아이들은 나무가 된다. 때로는 힘들지만 쉬운 길이 어디 있어. 내가 택한 스승의 길 어찌 편하길 바랄까. 이 세상 한 아이만 남더라도 나는 그의 스승 자랑스런 스승이다. 사랑하고 가르친다, 내 시간 태워. 위대한 스승의 길 영원하라, 스승의 길 오늘도 간다.’ 1968년 트윈폴리오로 데뷔한 세시봉 멤버 가수 윤형주(69·사진) 씨가 지난 2013년 작사·작곡한 ‘스승의 길’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윤 씨는 교권이 추락해 교사들의 사기가 떨어진 상황이 안타까워 교사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발표했다.

‘스승의 길’은 처음에는 ‘선생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됐으나 후에 제목이 바뀌었다. 윤 씨는 “교사들이 사회적으로 위축된 상황을 딛고 일어나 자긍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노래”라며 “노래 가사처럼 교사가 아이들에게 어떤 비전을 주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은 훗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어떤 분야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 씨가 선생님에 대해 남다른 존경심과 애정이 있는 이유는 윤 씨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선생님 때문이다. 그는 문대근(86) 전 경기고 교사와 서울고에서 교사, 경희대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아버지 고 윤영춘 씨를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사로 꼽았다.

문 교사는 윤 씨가 경기고 3학년 때 담임을 맡았다. 체육 과목을 가르쳤던 문 교사는 반 아이들이 ‘고릴라’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체격이 크고 엄했다. 윤 씨는 “반 아이들이 말썽을 일으키면 북한 출신인 선생님께서 ‘똑바로 하라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며 “그때마다 학생들은 꼼짝 못 하고 숨을 죽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에는 외모와는 달리 글을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등 감수성이 풍부했다. 그는 “선생님은 뜻밖에 ‘독서광’이었다”며 “선생님과 서로 시를 지어 쉬는 시간마다 바꿔 읽으며 어떤 영감을 받아 시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를 토론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 씨는 문 교사와 고교 시절 시와 소설을 함께 읽고 토론하던 기억으로 ‘웨딩케익’ ‘슬픈 운명’ ‘하얀 손수건’ 등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를 작사할 수 있었다.

문 교사는 고교 졸업 후 연세대 의대에 진학할 정도로 수재였던 윤 씨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일렀다. 윤 씨는 “선생님은 입시에 지쳐있던 반 아이들을 위해 함께 공을 차고 뛰어주었다”며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유혹이 많은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졸업한 지 50년이 흘렀지만 경기고 동창들과 함께 1년에 서너 차례씩 문 교사와 식사자리를 마련한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도 동창들과 함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식당에서 문 교사를 만났다. 여든이 넘은 스승은 제자들을 만나는 날이면 사비를 털어 밥값을 계산한다. 제자들은 그런 스승을 위해 많지 않은 액수지만 용돈을 모아 전달한다. 노환으로 평소에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문 교사는 칠순을 바라보는 제자들을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윤 씨는 “여든이 넘은 스승이 제자들을 위해 밥값을 계산하며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스승이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윤 씨는 “제자들에게 한없이 주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뭉클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 교사는 식사 자리를 마칠 때마다 제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너는 최고다’라고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윤 씨는 “나와 동창들은 선생님의 격려에 한 해를 살 힘을 얻는다”고 고백했다.

윤 씨는 아버지 윤영춘 교수도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았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한 윤 교수는 해방 직후에 서울로 내려와 교사 생활을 하다 1948년에 국학대학 교수가 됐다. 국학대학은 1967년까지 존속하다가 지금의 우석대에 흡수됐다. 동국대, 신흥대에서도 강의를 맡았다. 신흥대는 지금의 경희대다. 윤동주 시인의 당숙인 윤 교수는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福岡) 교도소에서 옥사했을 때 시신을 수습한 인물이기도 하다. 윤 씨는 해방 직후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교직에 있으면서 제자들의 먹거리와 입을 것까지 일일이 챙기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는 제자들을 위해서 평생을 희생했다”며 “학문적 가르침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사비를 털어 제자들의 혼수를 장만하고 유학자금을 댔다”고 선친을 기억했다. 그는 “아버지는 나의 평생의 스승이었다”며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운 적은 없지만 희생정신을 배웠다“고 말했다.

윤 씨는 아버지, 문 교사 등 자신을 가르쳤던 교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스승의 길’ 노래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오래된 학교의 교가를 만들어 주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리듬과 가사의 교가는 학생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며 “오래된 학교에 아이들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교가를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1년에는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을 지원받고 있는 대학생 10여 명의 멘토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학생들과 교사들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을 두고 살아나온 데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강모 전 교감 사건 등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며 “교사들이 수치를 당하지 않고 아이들 앞에 스승으로 설 수 있는 환경을 교사와 제자들이 힘을 합쳐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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