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부터 평생 일기를 쓴 올리버 색스는 언제 어디서나 썼다.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머리맡에 항상 공책을 뒀으며 생각이 떠오를 때면 주변의 어떤 것에든 썼고, 이들을 정리해 방대한 자료로 남겼다.
열네 살부터 평생 일기를 쓴 올리버 색스는 언제 어디서나 썼다.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머리맡에 항상 공책을 뒀으며 생각이 떠오를 때면 주변의 어떤 것에든 썼고, 이들을 정리해 방대한 자료로 남겼다.

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두렵지 않다고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는 되돌려 주었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우리 시대 위대한 지성이자 신경정신의학계의 큰 별 그리고 의학계 계관시인으로 불렸던 올리버 색스(1933∼2015)가 2015년 2월 뉴욕타임스에 쓴 특별 기고문 ‘나의 삶(My Own Life)’의 일부이다. 색스는 2005년 발병해 왼쪽 시력을 앗아간 희귀암 안구흑색종이 전이돼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하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두 달 후인 4월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가 나왔고, 그해 8월 색스는 세상을 떠났다.

해를 넘겨 번역·출간된 색스 자서전은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로 살았던 한 열정적이고 따뜻한 지식인의 삶을 향한 중단 없는 모험의 기록이다. 영국 명문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성공한 천재지만 그는 어린 시절 조현병을 앓은 형을 보며 불안증을 겪었고, 늘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으며, 지적으로 친구들에게 뒤진다고 생각했다. 생애 내내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었다. “가증스럽구나,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의 말은 평생 그의 내면에 죄의식을 주입했고, 번번이 사랑에 실패한 뒤 한동안 마약에 빠져 살기도 했다. 이렇게 그의 삶에는 빛과 어둠이 혼재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이 뒤엉킴을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든 힘은 육체적인 강인함, 생에 대한 근본적인 의지, 지식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람에 대한 멈출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자서전은 이 같은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깨어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그의 책과 삶에 열광해온 독자들에겐 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이지만 동시에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상처 속에서도 삶과 학문 그리고 세상을 사랑했던 과학자의 삶은 그 어떤 소설보다 감동적이다.

자서전은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에서 시작해 세상에서 잊힌 신경 질환과 그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뒤 뇌·의식·정신의 비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헤쳐나간 인생 궤적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임상을 통해 마약중독에서 빠져나오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스무 살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했다가 “나도 너를 사랑하지만 내 방식대로 사랑한다”고 거절당하고, 스물일곱 살 때 만난 두 번째 사랑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놀라 도망가버린 뒤 그는 몇 년간 마약에 빠져 살게 된다. 그러던 그는 서른셋 어느 날 “살아서 내년에도 새해 첫날을 맞고 싶다”며 마약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연구에서 임상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1966년 임상을 시작하자마자 환자들에게 매료됐고, 환자들에게 마음을 다했다. 그 뒤 그는 수십 년 동안 1000권이 넘는 자세한 환자일지를 남겼고, 이는 그대로 그의 저작으로 이어졌다. 망상, 틱장애, 각종 인식·행동장애, 조현병 등 그가 임상 신경의로서 만나고 관찰하고 치료한 환자들은 하나같이 기이했지만, 그는 첫 책 ‘깨어남’에서부터 그들을 비정상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매우 독특한 다름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소개한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의 다름과 다양성, 기이함을 색스처럼 관찰하고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하고 합리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과학이 인간을 얼마나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은 최고의 선물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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