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두렵지 않다고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는 되돌려 주었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우리 시대 위대한 지성이자 신경정신의학계의 큰 별 그리고 의학계 계관시인으로 불렸던 올리버 색스(1933∼2015)가 2015년 2월 뉴욕타임스에 쓴 특별 기고문 ‘나의 삶(My Own Life)’의 일부이다. 색스는 2005년 발병해 왼쪽 시력을 앗아간 희귀암 안구흑색종이 전이돼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하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두 달 후인 4월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가 나왔고, 그해 8월 색스는 세상을 떠났다.
해를 넘겨 번역·출간된 색스 자서전은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로 살았던 한 열정적이고 따뜻한 지식인의 삶을 향한 중단 없는 모험의 기록이다. 영국 명문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성공한 천재지만 그는 어린 시절 조현병을 앓은 형을 보며 불안증을 겪었고, 늘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으며, 지적으로 친구들에게 뒤진다고 생각했다. 생애 내내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었다. “가증스럽구나,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의 말은 평생 그의 내면에 죄의식을 주입했고, 번번이 사랑에 실패한 뒤 한동안 마약에 빠져 살기도 했다. 이렇게 그의 삶에는 빛과 어둠이 혼재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이 뒤엉킴을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든 힘은 육체적인 강인함, 생에 대한 근본적인 의지, 지식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람에 대한 멈출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자서전은 이 같은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깨어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그의 책과 삶에 열광해온 독자들에겐 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이지만 동시에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상처 속에서도 삶과 학문 그리고 세상을 사랑했던 과학자의 삶은 그 어떤 소설보다 감동적이다.
자서전은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에서 시작해 세상에서 잊힌 신경 질환과 그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뒤 뇌·의식·정신의 비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헤쳐나간 인생 궤적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임상을 통해 마약중독에서 빠져나오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스무 살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했다가 “나도 너를 사랑하지만 내 방식대로 사랑한다”고 거절당하고, 스물일곱 살 때 만난 두 번째 사랑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놀라 도망가버린 뒤 그는 몇 년간 마약에 빠져 살게 된다. 그러던 그는 서른셋 어느 날 “살아서 내년에도 새해 첫날을 맞고 싶다”며 마약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연구에서 임상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1966년 임상을 시작하자마자 환자들에게 매료됐고, 환자들에게 마음을 다했다. 그 뒤 그는 수십 년 동안 1000권이 넘는 자세한 환자일지를 남겼고, 이는 그대로 그의 저작으로 이어졌다. 망상, 틱장애, 각종 인식·행동장애, 조현병 등 그가 임상 신경의로서 만나고 관찰하고 치료한 환자들은 하나같이 기이했지만, 그는 첫 책 ‘깨어남’에서부터 그들을 비정상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매우 독특한 다름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소개한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의 다름과 다양성, 기이함을 색스처럼 관찰하고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하고 합리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과학이 인간을 얼마나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은 최고의 선물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