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난 박희정 코치는 “중국 골프를 무시하지 못할 날이 곧 올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의 골프 교류에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난 박희정 코치는 “중국 골프를 무시하지 못할 날이 곧 올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의 골프 교류에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1년 국내 투어에 참가했던 박희정.
2011년 국내 투어에 참가했던 박희정.
박희정 KLPGA 이사

박희정(35)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글로리아 박’이란 이름으로 2승을 거뒀다. 은퇴한 지 2년이 넘었지만 현역 때보다 더 바쁘다. 지난해부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겨냥한 중국 여자골프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고, 최근 출범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사의 부사장 직함을 새로 얻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이투아리 스포테인먼트’ 개소식에서 박 코치를 만났다.

그는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났고, 행사 참가자들은 개소식이 부사장 취임식이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의 제자인 중국 여자 프로골퍼 5명도 중국에서 건너와 축하했다.

박 코치는 2000년부터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등과 함께 LPGA에서 활약한 태극낭자 1세대다. 2008년 결혼해 2009년 자녀를 출산했고 2010년 말 국내로 돌아왔다. LPGA투어를 꼭 10년 채운 뒤 유턴했다.

2011년 국내 투어 시드전을 통과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로 복귀했지만 2013년 말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KLPGA 이사직을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준비했다. KLPGA가 중국여자프로골프(CLPGA)와 공동주최하던 오리엔트 차이나오픈을 위해 중국을 오가며 중국 골프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았고, 지난해 3월 중국으로부터 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박 코치는 20세 전후의 중국 올림픽 대표 7명을 지도하고 있다.

박 코치는 “중국은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에 골프 대표팀만을 위한 트레이닝센터를 만드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며 “아직 어린 선수들이기에 해외 투어에 출전하고,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응시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제자 중 조자이는 퀄리파잉 스쿨을 26위로 통과해 조건부 시드를 받았다.

박 코치는 중국 골프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서 그동안 골프가 주목받지 못했지만,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중국 골프에 대한 관심과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며 “중국 골프를 무시하지 못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코치는 LPGA 개척자 중 한 명이지만 “골프를 죽기 살기로 한 적이 없어 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부모 간섭을 받지 않았기에 국내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일찌감치 골프를 즐겼다”며 “선수 때 좀 더 악착같이 골프를 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덧붙였다.

박 코치는 중2이던 1993년 골프를 시작했고 이듬해 호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대개는 부모의 권유로 골프 유학을 가지만 박 코치는 정반대였다. 과학고 진학을 기대했을 만큼 우등생이었기에 그의 부모는 망설였다. 하지만 박 코치는 “골프 유학을 안 보내주면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해 기어코 허락을 받아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부모는 외동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박 코치는 유학 1년 만에 호주 국가대표에 발탁돼 보은했다. 그런데 ‘엄마 박희정’은 다르다. 박 코치는 “7살 된 아들 녀석이 골프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해 놀랐다”며 “아들만큼은 골프를 시키지 않을 작정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5년 반 동안 호주대표로 활약했고, 고3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찌감치 프로가 되겠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 1998년 프로가 됐고 두 번째 출전한 스포츠서울여자오픈에서 우승했으며 이어 인도네시아오픈까지 제패했다. 프로 첫해 5개 대회에 출전해 상금 랭킹 9위에 올랐다.

1999년 말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했고 2001년 윌리엄스챔피언십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따돌리고 첫 우승컵을 안았다.

그리고 이듬해 빅애플 클래식에서는 한희원을 연장전에서 물리치고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호주 출신에다 동글동글한 외모 덕에 ‘코알라’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2승 이후 LPGA투어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고, 2005년엔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상금 랭킹 톱10에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 남겨둔 아들이 늘 눈에 밟혔다.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LPGA투어 대회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2010년 국내로 돌아왔다.

박 코치의 베스트 스코어는 2003년 나인브릿지 클래식 3라운드에서의 10언더파 62타. 당시 안시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공식대회에서의 5차례를 포함해 모두 8차례 홀인원을 경험했지만, 운이 지독히 없어 부상으로 주어지는 자동차는 한 대도 받지 못했단다.

중국 올림픽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 그에겐 ‘골프 한류 전도사’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박 코치는 “중국에선 프로 선수들을 동경의 눈으로 쳐다본다”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높기에 절로 열심히 지도하려는 마음이 생긴다”고 밝혔다.

박 코치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사의 부사장으로 영입된 건 중국 골프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중국 골프 사정에 밝기 때문. 박 코치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선수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기에 가을이 지나야 ‘비즈니스 우먼’으로 변신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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