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 논설위원

병신년(丙申年) 새해에도 ‘희망가’는 흘러나온다. 어느 논객은 ‘그래도 경제의 희망을 본다’고 했고, 어느 시인은 ‘저 단단한 새해를 보라’고 노래했다. 대기업 오너들도 ‘위기는 기회’라며 직원들을 다독거린다. 금융계 수장들은 생경한 사자성어까지 끄집어내며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 애쓴다.

새해 벽두 우리 앞에 놓인 여건은 올해 희망도 기대난망임을 예고한다. 북한 핵 실험과 ‘2중(中·중국과 중동) 폭탄’ 등 동시다발적 초대형 악재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 퇴보의 주범인 국회가 그 모양 그 꼴이기에 그렇다. 무법·무능·무치 등 무(無)자 돌림의 단어를 그 앞에 죄다 갖다 붙여도 시원찮을 판이다. 국회의원은 아예 화성인으로 치부된다. ‘역대 최악’ 19대 국회의 전과(前科) 일각만 복기해도 국민은 울화가 치민다.

19대 국회의 주 죄목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국가 경제 파탄죄’와 ‘배임죄’다. 형법상이 아닌 국민 정서상 그렇다는 말이다. 전자는 이전의 경제 위기 때보다 더한 재앙이 몰아닥칠지 모를 절체절명의 시점에 이를 해결할 책무가 큰 국회가 그 위기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관련 입법을 방기(放棄)한 혐의다. 후자는 해야 할 건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건 골라 함으로써 국민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친 혐의다. 급기야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선거구 획정 시한을 어겼다’는 이유로 51년 만에 피고 신분으로 정식 재판을 받게 되는 치욕사도 보탰다. 오죽하면 ‘살아 있으면 뭐라도 하세요’라는 정치권에 보내는 격문이 요즘 SNS에서 유행할까.

국회가 ‘묻지마 입법’으로 국민에게 눈물을 안겨준 사례는 숱하다. 하지 말아야 할 입법의 대표적 예는 관세법 개정안이다. 재벌 특혜를 막겠다며 기존 면세점 사업자도 5년마다 승인받도록 한 이 법이 발효되면서 문을 닫게 된 대기업 면세점의 직원 2000여 명이 졸지에 실직자 신세가 됐다. 유망한 20대 청년 창업가의 꿈을 앗아간 자동차관리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설립 1년 만에 거래액 300억 원을 돌파한 온라인 중고차 경매업체 대표 박모 씨는 사흘 전 ‘눈물의 폐업’을 해야 했다. 여당 발의 후 두 달 만에 ‘땡처리’된 이 법에 따라 온라인 업체도 일정 규모의 오프라인 영업장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충족할 수십억 원이 없어서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표심을 얻으려 앞길 창창한 청년 사업가를 사장(死藏)시켰다는 비난도 나온다.

해야 할 입법 방치는 어떤가. 별의별 ‘끼워팔기’ 정쟁의 제물이 돼버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은 또 언급하면 입이 아프다. 대부업법 개정안 통과가 늦춰지면서 260만 서민이 고금리 공포에 떨고 있다. ‘선행학습 금지법’ 개정안 처리 불발로 방과 후 학생 예습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범법자가 됐다. 이번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오늘도 핵심 경제활성화법안 통과는 또 무산됐다. 경제위기에 안보위기까지 덮친 판국에 새누리당은 진박, 친박, 비박이네 하며 이전투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내홍으로 지리멸렬하고 있다. 안철수 신당도 ‘이삭줍기’에 정신이 없다.

이제 정파 이익만 좇는 백해무익 국회는 퇴출돼야 한다. 국민 응징만 남았다. 우선, 후진국회의 원죄인 국회선진화법을 바로잡아야 한다. ‘60% 동의’에 빌붙어 갑질해대는 ‘선진화 1기’ 야당 의원들의 죄상만으로 그 명분은 충분하다. 방법은 많다. 여야가 스스로 개정하거나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국민이 여든, 야든 법 개정에 필요한 180석을 한 당에 몰아주는 길도 있다.

유권자 역할도 막중하다. 국민이 직접 나서 국회를 환골탈태시키겠다는 각오로 4·13총선 투표에 임해야 한다. 그동안 지역주의, 온정주의 등에 기대어 투표를 해왔다면 이번엔 달라져야 한다. ‘괴물’은 선진화법이 아닌 국민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국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 이번 총선이 ‘모리배 정치’를 단죄하는 투표 혁명의 발원이 돼야 한다. 공무원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무불간섭(無不干涉) 국회를 견제하려면 행정부도 강해져야 한다. 관료들은 복지동면(伏地冬眠)에서 깨어나 야성을 키워야 한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代價)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한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정치인은 국민을 ‘가마니’로 본다는 진리를 늘 가슴에 담아둬야 할 시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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